[문화산책] 평소에는 느끼지 못한 사람의 자리가 누군가의 부재로 더 커 보이는 것은 늘상 느끼는 바다. 사람의 빈 자리는 사람의 숫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품새에서 연유한 것임을 알겠다. 사람의 품새는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의 언행과 행동, 그리고 그 사람이 품었던 세상이다. 즉 그 사람의 존재의 크기에서 부재시 더욱 빈 자리가 커 보이고 그 사람의 모습이 커보인다.

지난 주말, 장흥의 소설가 김석중 선생이 향년 74세로 타계하였다. 갑자기 전해진 선생의 부음을 접하고서 탄식하였다. 30년 가까이 가깝게 지내던 터였기 때문에 상실감이 더욱 커서 망연자실하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연락하며 지내던 터여서 느닷없이 전해진 선생의 부음 소식에 놀란 것이다. 그동안 김석중 선생과는 수많은 일을 서로 머리를 짜내어 의논하며 일을 해왔는지라 선생이 가시자 여태까지 생각도 못했던 선생의 커다란 그림자가 느껴졌다.

김석중 선생은 소설가답게 장흥문학 전반에 걸쳐 손길이 안 간 데가 없을 정도로 폭넓게 일을 해왔다. 때로는 사람들과 부딪치다보니 호불호가 분명한 선생이지만 나는 신뢰를 가졌다. 그동안 선생이 장흥문학을 위해 헌신한 일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이 계셨기 때문에 장흥문학, 또는 장흥문화가 더욱 빛날 수 있었다고 믿는다.

김석중 선생은 1980년 삼성문예상을 받음으로써 문단에 데뷔한 후 대산문화재단 창작기금을 수혜하고 전남도문화상을 수상하는 등 일찍이 소설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선생은 남도의 서정이 물씬나는 향토적 서사를 담아냈다. 그동안 장편소설 ‘바람’, ‘햇빛부신 날의 초상’, ‘꿈꾸는 물새’, ‘거미눈’, ‘구름 걷어내기’, ‘청산에 우짖는 저 새는’, ‘속 깊은 우물’, ‘다시 지와몰에 와서’, ‘풀잎과 강물이야기’ 등을 펴내며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설화집, 민속지, 인물열전, 인문학 총서, 향토문화 등 지역문화에도 관심을 가져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선생 가족 모두가 대처로 떠나고 없는 고향에 남아 별곡문학동인회를 만들어 장흥 관내 문학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고, 출향작가들을 끌어모아 고향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자긍심을 심어줬다.

김석중 선생은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지역문화운동에도 적극적이어서 전국 유일의 문학특구 장흥을 알리고 풍요롭게 일구는데 앞장서서 장흥이 낳은 걸출한 작가 이청준, 송기숙, 한승원 선생의 문학을 빛내고 선양하는 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특히 이청준 선생 추모사업을 해마다 개최하며 이끌어왔다.

김석중 선생은 문화교류사업에도 공을 들여왔다. 해마다 장흥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버꾸놀이를 대동하고 일본의 재일동포와 그들의 2, 3세들에게 우리의 얼을 심어주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곤 하였다. 더불어 장흥군민들에게는 재일동포들이 삶을 이해하도록 하였다. 이밖에도 향토문화 보전 운동에도 앞장서서 후배들과 직접 장흥 관내를 돌아다니며 향토사, 향토문화 등을 취재 발굴하여 수많은 책으로 펴내었다. 이렇듯 타계하기 전까지 자신의 심장이 고장났어도 몸을 돌보지 않고 인적자원들을 지휘하다가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김석중 선생은 젊은 시절 기독청년운동도 펼쳤다. 그 시절 광주민중항쟁에 참여한 것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바다.

위에서 보았듯이 김석중 선생은 국회의원 보좌관을 잠시 지냈을 뿐, 평생동안 문화기획자로서 고향을 지키며 고향의 문화를 위해 삶을 고스란히 바쳤다.

선생이 운명하자 수습하지 못한 사업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새삼 선생의 빈 자리가 너무도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문학특구의 고장답게 든든한 후배들이 선생이 미완으로 남긴 사업들을 마무리 할 수 있음은 다행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장흥문화 전반에 걸쳐 폭넓게 관여했던 선생의 역할을 어느 누가 해낼 수 있을는지 빈 자리가 너무 커 보인다.

사람이 살다 간 자리가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참으로 많다. 일생동안 선을 베풀다가 한 가지 흠을 남기면 그 자리가 개운하지 않는 경우를 우리는 나라의 지도자들에게서 보았다. 사람은 모두가 한 번 죽지만 그 죽음조차 아름답게 함으로써 그 사람의 부족한 것조차 다 뒤엎을 수 있는 것이다. 선생은 언젠가 “장인어른이 우리나라 의학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시신을 의과대학에 기증했는데, 참 보기 좋더라. 나도 죽으면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선생이 그저 해보는 말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였는지 울부짖는 딸에게 “내가 죽으면 시신을 기증해라”고 유언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선생은 “내가 죽으면 세상에 내가 죽었다고 알리지 마라, 그리고 가족장으로 아주 간소하게 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민들레 씨앗처럼 자신을 바람에 다 날려보내고 세상에 씨앗을 뿌리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이렇듯 초연해질 수 있을까?

그동안 큰 일을 하다보니 선생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분들에게 마지막 가는 길에 티끌 하나 남기지 않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갸륵하고 지극한 선생의 마지막 마음에서 우리가 몰랐던 선생의 또 다른 면을 보는 것 같아 기쁘고도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후배들이 그의 유지를 받들어 김석중 선생이 하고자 했던 문화운동을 더욱 활발하게 펼치겠다는 기미가 보인다. 모두 벗어버리고 영혼만 남아 바람이 되어버린 소설가, 그리고 문화운동가 김석중 선생은 이따금 바람으로 다가와 우리에게 뭐라고 말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