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늘날 세계 각국의 보건당국은 흡연의 폐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담배는 한 때 귀중한 약제로 대우받았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귀환하면서 원주민들로부터 담배를 얻어와 유럽에 퍼뜨린 것이 효시라 한다. 원주민들이 약으로 사용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때문에 서구에서는 한때 만병통치약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하면서 그 해악이 속속 드러나고부터는 점차 담배가 공공의 적이 됐다. 오늘날의 의학적 상식으로 본다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모두가 무지했기 때문에 독을 약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굳게 믿어왔던 상식이나 과학적 이론들이 알고 보면 허구이거나 잘못된 믿음으로 밝혀진 경우는 실로 허다하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천동설이 그렇고, 행성에서 퇴출된 명왕성이 그러하다. 특히 사회분야의 이론은 그 진위가 더욱 불안정하다. 사회적 현상이란 재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 검증하기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사회분야의 이론이나 관행은 지금 잘 집행되고 있더라도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지속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4차재난지원금 지급이 임박하면서 다시 거론되는 이야기가 균형재정 논쟁이다. 균형론 주장의 주요 골자는 정부 지출은 세수의 범위로 한정해야지 방만하게 운영되면 국가도 부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전통적 경제이론에 충실해왔던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스스로를 ‘곳간지킴이’로 규정하면서 재정지출에 강력히 저항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혹시 담배의 사례처럼 너무 철 지난 상식을 고집하지는 않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정부와 가정경제는 규모와 운영방식이 다르다. 가계는 어렵다고 자유롭게 빚을 내 쓸 수 없지만, 발권기능을 가진 정부의 장점은 필요할 때 먼저 당겨 쓸 수 있기 때문에 위기에 대응도 가능하고 선투자도 용이하다. 이런 재정의 이점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집안에 환자가 발생했는데도 돈 쓰는 것이 두려워 그냥 아픈 대로 살자는 거와 다름이 없는 논리이다.

또 하나는 위기에 빠진 국민들을 방치하면 그대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만약 가정경제가 무너지면 더 많은 복지지출을 국가가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경제가 위축되면 세수도 줄어들기 마련이어서 국가재정이 더 어려워질 것은 뻔한 일이다. 지금 호미로 막을 수 있는 문제를 가래로 막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OECD의 여러 나라들이 거침없이 재정을 풀어 어려운 국민을 지원하는 것을 눈여겨 봐야한다. 그 나라들은 2008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이미 균형재정의 원칙을 버리고 금융기업에게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지원했고, 코로나 팬데믹 위기가 도래하자 즉각 재정을 풀어 국민부터 살리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과거 위기의 경험으로 볼 때 한번 무너진 국민경제를 회복하는 데는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정운영의 목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국가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던 시대에는 국가가 과속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면, 지금은 자본주의의 전환기를 맞아 성장은 정체되고 일자리는 줄어드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완전고용을 목표로 삼고 일자리를 만들고 이를 촉진하는데 재정을 투하해야 한다.

끝으로 재정당국에 묻고 싶은 말은 왜 세출의 조정에는 미온적인가이다. 상황이 급박하면 우선순위를 조정해서 긴급한 부분에 우선 지원하는 것이 정상적인 예산집행일 것이다. 덜 시급한 대기업 지원, 토건관련 예산을 재검토해 뒤로 미루고 위기에 처한 민생을 먼저 지원하는 것이 순리라 여겨진다.

현재 우리사회의 지배적인 제도나 관행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그것들은 고집한다면 오히려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 마치 담배를 약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과거에 안주하려는 관성은 담배처럼 중독성을 가지고 있어 개혁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을 먼저 바꾸는 것이 우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