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의 미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시인의 시는 평시조와 사설시조 양자를 아우르고 있다. 특히 정형율의 평시조와 정형율을 일탈한 사설시조라는 외적인 특징뿐만 아니라 평시조와 사설시조의 내적인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를테면 평시조의 정형적인 세계관과 사설시조의 현실풍자의 세계를 펼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풍자적 요소는 이 시집 표제에서도 읽힌다. 표제의 단어 ‘먼 곳’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아 보인다. 먼 곳은 현대인들의 개별화되고 인스턴트화된 삶의 징표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 ‘먼 곳’은 실제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마음과 심리의 거리를 표상화하는 듯하다. 늘 먼 곳처럼 살아가는, 익숙해하는 현대인들의 지향점으로도 읽힌다.
시집 전반에 문명의 상흔들이 포착된다. 익명성에 갇힌 개개의 파편화된 삶들이 오히려 문명의 속박에 갇혀 편안함을 느끼며 안주하는 행태를 시적 자아는 놓치지 않는다. 삶의 근원적 본질을 상실하고 표피로서의 호흡을 즐기는 현대의 몰개성화된 삶을 질타한다.
‘인정된 당신만이 괄호 안에 들어간다//이름 옆 괄호 속에서/살고 있는 또 다른 당신//괄호 속이 궁금할 뿐/당신에겐 관심없지//괄호와 악수하고/괄호와 대화한다//괄호에 갇히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괄호 안에 갇힌 사람들’)이라거나 ‘구멍 난 플래카드가 온몸으로 바람 맞고/진눈깨비들 신음처럼 허공에서 떨다가/저 혼자 녹아버리는/겨울날 저녁이었다’(네안데르탈인)고 노래한다. ‘혼자 녹아버리는’에서는 존재의 지워냄까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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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민 시인 |
문학평론가 진순애씨는 “사설시조의 현실풍자로써 한국사회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평시조의 화자가 꿈꾸며 그리는 세계가 초월적이자 보편적 가치의 세계라는 점에서 그의 시조는 단지 전통적 장르로서 시조의 현재화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초상으로써 동시대성을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며 “결핍의 시대에 고독한 인간의 초상화를 노래하면서 상실의 시대인 현대에서 꿈꾸는 자아의 그리움으로 평시조의 절제미를 그려낼 뿐만 아니라, 결핍과 상실로 인한 문제적 현대에 대한 풍자로 사설시조의 특징을 동시대화하고 있다”고 평했다.
시인은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시대에 시인으로 산다는 건 축복 아니면 저주다. 희열의 밤과 회한의 새벽…. 한 방울의 잉크로 무엇을 할 수 있나. 여기 절망의 목록에 한 줄을 추가한다. 내 피는 잉크다”라고 밝혔다.
박성민 시인은 전남 목포 출생으로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 200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와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가 당선돼 등단했다. 시집으로 ‘쌍봉낙타의 꿈’과 ‘숲을 金으로 읽다’를 펴냈으며,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과 오늘의시조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2020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을 수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