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독일 본에 가면 ‘클라이스’라는 파이프오르간업체가 있다. 건물은 허름하고 종업원은 65명에 불과한 중소기업이다. 공장 안에선 나무를 깎고 다듬는다. 파이프오르간은 파이프가 30%, 나무가 70%를 차지하는 제품이다. 아무리 뜯어봐도 자랑할 게 없는 듯한 업체다. 하지만 이 회사는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파이프오르간 분야의 ‘히든 챔피언(글로벌 강소기업)’으로 꼽은 업체다. 독일의 대표 건축물인 쾰른대성당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이 바로 클라이스 제품이다.

뿐만 아니다. 영국 등 50개국에 수출한다. 해외 마케팅에 적극 나서는 것도 아니다. 이 회사엔 아예 수출부서가 없다. 그런데도 수출이 이어지는 것은 각국에서 찾아오기 때문이다.

독일은 히든 챔피언의 나라다. 헤르만 지몬에 따르면 전 세계 2734개 ‘히든 챔피언’ 중 47.8%인 1307개가 독일에 있다. 기계 금속 화학 자동차부품 광학측정기기 등 수많은 분야에서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독일 중소기업이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근면함, 글로벌 전략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광주시는 타 도시에 비해 기업수가 적고 경제규모도 작은 편이다. 중소기업은 4736개사(2017년 통계청 기준), 상장회사는 24개, 월드클래스 기업은 4개사에 불과하다. 짧은 시간안에 경제규모를 확 키우는 건 쉽지 않다. 그렇다면 기존 기업이나 스타트업을 중장기적인 히든챔피언으로 키우는 전략은 없을까.

다시 독일의 사례를 보자. 독일에 히든챔피언이 많은 것은 개별기업의 노력 못지않게 클러스터 활동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산학연이 머리를 맞대고 기술 개발에 나서는 것이다. 특히 4차 산학혁명 시대엔 클러스터 활동이 더욱 중요하다. 여기엔 인공지능 자율주행 센서 로봇 전자 통신 제어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츠오울(It’s OWL)’이라는 클러스터를 보자.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동쪽 ‘리페’에 있는 기업·대학·연구소 등의 클러스터다. 이 지역엔 세계적인 공작기계업체 DMG모리, 명품 가전업체 밀레, 빌레펠트대, 프라운호퍼연구소 등 기업과 대학 연구소가 모여 있다. 이 중 170여 곳의 기업 대학 연구소 등이 손잡고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사이버 물리시스템 (CPS), 지능형 센서, 자동화 부품 등이다. 개발된 기술은 여러 중소기업에 제공한다. 이 중 일부 중소기업은 이 클러스터 활동을 통해 무려 7t의 물품을 거뜬히 운반할 수 있는 콤팩트한 자율주행운반로봇을 개발하기도 했다.

마침 광주는 클러스터 활동을 하기에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 전남대, 조선대, 광주과학기술원(GIST)을 비롯해 좋은 대학과 연구기관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통해 우수한 인재들도 육성되고 있다.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도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이 산학연협업을 강화해 미래먹거리를 개발한다면 광주가 히든 챔피언의 요람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광주시가 중점 추진 중인 인공지능산업육성이 기존 업체들의 미래먹거리와 연결된다면 중소기업들은 성장엔진을 달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국내 기업은 독일기업에게 없는 순발력과 짧은 시간 안에 난관을 돌파하는 저력이 있다. 광주에 히든챔피언이 속속 탄생한다면 이 지역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것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