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여! 철의 사나이여―
태양은 폭군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동에서 서로 날이 새고 해가 진다
이런 분위기에 역사는 유전(流轉)하는 것인가
광음(光陰)은 영원히 흐르고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리고 또
삶과 죽음은 순식간에 왔다 사라지는 것
지금 우리는 그걸 슬퍼하는 게 아니다
헌데 지금
우리가 가장 용감한 투사를 잃을 줄이야……
우리는 자신의 목숨을 아끼는 무정(無精)한 무리가 아니다
우리는 인류 최고의 이상 ××××주의를 위해서는
설령…… 이 생목이
당장 날아갈지라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아……
우리의 전선에서 가장 앞서고 가장 용감한
말라를 잃을 줄이야……
아아!
‘말라여! 철의 사나이여!’
동지의 70여 년 투쟁은
―인류의 낙원을 건설하려고
정의의 검은 깃발 치켜올린 투쟁은―
얼마나 격렬하고 통렬했던가
추방과 감옥, 그리고 빈곤과 병마……
허나 동지는
언제나 용감하지 않았는가?
말라는 열정의 사나이―태양 같았던 대상
―모든 걸 사랑하는
자유 평등한 사랑의 명성(明星)―
허나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다
철과 같은 의지의 인간! 열정을 불태우던 사내는
지금 목숨이 끊어져
로마의 한구석에 오랫동안 누워있다
아아! 이지(理智)로 빛나는 그 투지
말라테스타는 눈을 감았다
나는 말라를 본 적이 없다 또 알지 못한다
허나 나는 알고 있다
그의 정신은 지금
더 강력히 되살아나
―지배계급에 대해 모두가 증오의 마음으로―
―희망에 빛나는 자유 코뮌(공동체)―
고귀한 검은 깃발을
단단히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아아!
‘말라여! 철의 사나이여!’
동지의 가슴에 타오르는
고귀한 이상은 어찌하여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는가
나 지금 동지의 죽음과 함께
굳은 신념 더욱 강해져
자유를 위해 행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리라 맹세한다……
아아! 동지들이여!
열렬한 의지를 품은 전 세계의 동지들이여!
그대들은……
말라테스타의 장렬한 죽음의 길을 뒤따라
일어서자!
자유 코뮌 건설을 위해―
자유·평등·박애의 수호를 위해―
그리고 안락한 사회……만인의 행복이 성취될 그 날을 맞자!
-‘우리들의 선구자 말라테스타를 애도한다―말라여! 철의 사나이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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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사상’ 3월호에 실린 이석성 생가(나주시 봉황면 유곡리)와 아들 이명한 원로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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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사상’ 3월호에 실린 원로소설가 이명한의 사부곡. |
2일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와 지역문단에 따르면 1930년대 호남지역 문인 가운데 유일하게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주창했던 전남 나주 출생 작가 이석성(李石城·1914~1948·본명 이창신)의 1932년에 창작한 시 ‘우리들의 선구자 말라테스타를 애도한다-말라여! 철의 사나이여-’가 토요미술사출판판매에서 펴내고 있는 시 전문 월간지 ‘시와 사상’ 3월호(3월1일 발행)의 ‘손을 잡는 세계의 시인들’ 코너에 원문 전체가 수록됐다.
이석성은 독립운동가이자 1934년 ‘신동아’를 통해 문단에 데뷔한 소설가로 항일저항의식을 그린 리얼리티 소설 ‘제방공사’가 데뷔작이며, 광주전남 소설가단에서 최고 연장자 중 한명인 원로 이명한 작가(90·광주 남구 방림동)의 부친이다. 이 시 작품은 이 원로소설가가 부친의 유품 속에서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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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사상’ 3월호에 실린 시 원본 2페이지 |
9연, 62행으로 이뤄진 이 시는 말라테스타의 죽음을 애도하며 당대 시대 상황 속 저항의 의지가 투영돼 있다. 시의 끝에는 ‘1932년 8월 구고(舊稿) 중에서’가 붙어 있다. 시 내용에 등장하는 말라테스타는 이탈리아의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를 말한다.
이처럼 일본 문예지에 소개되기까지는 김정훈 교수의 끈질긴 연구와 자료수집이 큰 역할을 했다. 이 원로 소설가와 김 교수는 문병란 시인(1934~2015) 추도식에서 인연을 맺은 뒤 시 원문을 제공받는데까지 연결됐다. 이후 김 교수는 관련 자료 수집를 위해 그해 8월29일 이 원로 소설가의 자택을 방문해 1929년 이석성의 학생운동과 관련한 재판기록을 입수, 광주학생운동 시발점인 나주에서 학생운동의 선두에 선 이석성의 면모를 살필 수 있었다. 아울러 이석성이 일본으로 건너가 수년 동안 지내는 배경도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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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사상’ 3월호에 실린 시 원본 마지막 페이지 |
여기다 김 교수는 이명한 원로 소설가는 물론이고 ‘제방공사’를 세상에 알렸던 광주타임즈 기자로 2001년 3월13일자에 ‘제방공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는 김선기 현 시문학파기념관 관장과의 만남을 통해 팩트 확인에도 나섰다.
김 교수는 이석성이 무엇보다 일본어가 유창해 일본 서적을 탐독했고, 일본 사상의 영향을 받은 그의 활동, 그리고 일본어 시 ‘우리들의 선구자 말라테스타를 애도한다’를 통해 그보다 2년 전 앞서 발표된 소설 ‘제방공사’와 연결된 이석성의 문학적 행간을 이해하는 단초가 됐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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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사상’ 3월호 겉표지 |
김정훈 교수는 “‘과연 이석성은 누구일까? 그리고 식민지기인 1932년 8월 이 시를 일본어로 집필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강한 의문을 품게 됐다”면서 “이석성을 일본에 소개하기 위해 교량 역할을 하는 게 제 임무지만 평소 전쟁과 문학을 연결고리로 삼는 연구자로, 그 시의 집필 배경과 이석성이라는 작가에 대해 조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 시를 일본문예지에 소개하기 위해 발품을 팔며 동분서주했던 김 교수는 이석성의 나주 생가와 나주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해 관련자의 증언은 물론, 관련 자료를 확보하면서 논문 작업 밑그림까지 그렸다. 김 교수는 시 ‘우리들의 선구자 말라테스타를 애도한다-말라여! 철의 사나이여-’를 소개한 여세를 몰아 이 시와 관련한 연구 논문들로 조명하고 싶어서다. 김 교수는 논고 ‘조선남부의 저항작가 이석성을 읽는다-발굴의 의미를 담아-’를 타이틀로 해 ‘시와 사상’ 4월호와 5월호에 연이어 소개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