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이야기와 같아요. 수능을 마친 아들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다가 덕수궁 수문군 자리를 소개받았습니다. 그때 아들은 이미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구요. 며칠 지난 후에 혹시 내가 가도 될까 하는 의문이 생겼고, 글거리라도 하나 건지자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막상 수문군들과 함께 하다보니 벌써 오년이 넘어버렸습니다. 단편소설 한 편 쓰자고 생각했는데 장편소설을 건지게 된 것이죠.”

수문군 출신으로 덕수궁 수문군의 애환을 소설화한 첫번째 작가이자 실제 지난해 10월 관련 장편소설 ‘포토타임’을 문이당에서 펴내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아온 전남 고흥 출생 소설가 이중섭(58)씨는 16일 오전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이처럼 소감을 밝혔다.

먼저 이 작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거쳐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자영업을 하다가 왕궁수문장교대의식 행사팀에 들어가 재직 중인 가운데 수문군과 인연을 언급한 뒤 ‘소설 쓰는 수문군’ 혹은 ‘작가 수문군’ 등 많은 닉네임이 따라붙을 것 같다는 물음에 답하며 수문군에 대한 여러 반응들에 대해 소개했다.

“처음에 저도 그 생소함 때문에 수문군에 들어갔어요. 수문군들의 시선에는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는 놈, 조금 선망하는 눈빛을 보내는 사람, 자기한테는 아무 관심도 없다며 스마트폰에 빠져있는 젊은 사람 등 여러 가지입니다. 외부인들은 수문군을 영국 왕실 경호원들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간혹 보이는데 글을 쓴다 하면 조금 색다르게 보는 것은 사실입니다. 수문군 출신으로 덕수궁 수문군의 애환을 소설화한 첫번째 작가인 것은 확실하죠.”

수문군 퍼포먼스 전후 생각에 잠긴 소설가 이중섭씨

이어 소설 속 수문군의 일상을 드러낸 이 작가는 자신이 재직중인 덕수궁 수문군의 정식 명칭이 ‘왕궁수문장교대의식’이라고 언급한 뒤 궁궐을 지키는 수문군들이 교대를 하는 장면을 퍼포먼스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사실 서울시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마련한 관광상품의 하나라고 밝힌다.

“교대의식 행사는 하루에 세 번 진행되는데 궁성문을 지키는 수문군과 순라군이 자리를 바꾸는 것이죠. 그 교대의식 중의 한 절차에 ‘포토타임’이 진행됩니다. 이 시간에 외국인 관광객과 사진 촬영이 있어요. 외국인 관광객들이 궁궐을 구경할 때 관광 가이드의 필수 코스로 정해져 있구요. 전국에 여러 수문군들이 있지만 덕수궁 수문군은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교대의식 행사 동영상은 유튜브 조회수도 엄청나죠.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 작가는 소설적 경험을 쌓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역할을 한 수문군에 보람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다는 점을 빠뜨리지 않았다. 소멸해 가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보람이었고, 이직이 빈번한 점은 아쉬웠다는 반응이다.

“수문군 행사복을 입으면 뭔가 단체의식이랄까 동질감이 생기죠. 젊은 날에 사라졌던 충정심, 조국이나 사회공동체에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솟습니다. 꽃잎이 휘날리는 봄날이나 눈 내리는 날에 월도를 들고 행렬을 하면 조선 시대의 고독한 무사가 된 듯한 기분을 즐기는 것은 저만의 특권일 수도 있구요. 단, 수문군들은 일년 근무 계약을 맺는 비정규직이에요. 대부분 수문군들이 앞날에 대해 불안해 할 수밖에 없어요. 이런 이유 때문에 젊은 수문군들의 이직이 빈번해요.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문군 퍼포먼스 전후 생각에 잠긴 소설가 이중섭씨

그는 현실에서 포토타임이 진행되는 곳은 ‘왕궁수문장교대의식’이 진행되고 정치적 갈등이 들끓는 곳이며, 위치상으로는 조선 시대 덕수궁이라는 궁궐과 현대빌딩 들어서 있는 중간지점, 과거 조선 시대의 수문군과 현대의 관광객들이 만나는 공간이지만, 소설 속 포토타임은 과거의 기억을 재생하는 시간과 공간으로 재활용되고 있고, 1980년 오월의 상처를 가진 첫사랑 서경과 만남이 이뤄지는 가상적인 시공간으로 바뀌는 점을 상기시켰다. 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적인 가상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 속 가상 시공간에서 원형과 서경 및 아내와 딸 하영의 모든 갈등이 원만하게 하나로 되는데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는 동시에 힘들게 살아온 지난 날들에 대한 따스한 어루만짐이 이뤄진다. 이런 의미의 포토타임을 생각하고 소설을 썼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

이 작가는 ‘인간과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등단 1년만에 장편소설 ‘포토타임’을 출간하게 된데 대해 여느 작가들처럼 단편소설을 준비하다 자연스레 장편소설을 쓰게 됐다고 전한다. 앞서 책을 펴낸 것이 장편소설이었을 뿐이고, 장편을 써야 진정한 작가가 된다는 소설가들 사이의 속설도 한 몫을 했다는 것이다. ‘포토타임’을 쓰고 나니 조금 이해가 됐으며, 단편을 계속 쓰다보니 필력이 생기면서 자연히 장편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작가는 또 다시 수문군 혹은 이와 관련한 집필 계획이 있는지 등과 관련해 계획을 들려주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주로 장편소설에 치중하려고 합니다. 단편소설집은 거의 출간 준비를 마친 상태예요. ‘포토타임’ 외전은 장편에서 다루지 않았던 덕수궁 수문군에 대한 이야기를 쓸까 생각하고 있어요. 수문군들이 다루는 기물이나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 말이죠. 늦었지만 뚜벅뚜벅 뭔가를 조금씩 만들어내는 작가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