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허난설헌의 시에 푹 빠져 지냈는데, 도저히 글을 안쓰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때부터 구상에 들어간 것이죠. 허난설헌이 봉건 사회 속 가부장적 사회 구조 아래에서 여성으로서 삶과 시적 재능을 펼치지 못한 채 사그라들어가는 내용을 엿볼 수 있는 시편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선 중기 천재 문인 남매로 평가받는 허난설헌(1563∼1589)과 허균(1569~1618)에 대한 장편소설을 10년 전 구상 한 뒤 집필한 끝에 ‘하늘 꽃 한송이, 너는’과 ‘허균, 불의 향기’를 최근 출간을 마무리, 소설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광주 출신 소설가 이진씨(59·북구 동림동)는 소감을 이처럼 밝혔다,

이씨는 10년 전 허난설헌의 시 ‘규원가’(閨怨歌)를 접하면서 같은 여성으로서의 삶과 본래 가지고 태어난 여러 재능들을 발휘하지 못한 채 방안에 갇히다시피하며 눈물을 짓는 그녀를 글로 형상화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구상에 본격 착수했다.

“문학적 세계를 함께 키워간 남매지만 허균이 허난설헌의 시문을 중국에 처음 소개하는 데 앞장서 결국 중국에서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됐잖아요. 그래서 허난설헌을 먼저 창작한 거구요. 허균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허난설헌은 그렇지 못해 많은 소재들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남매에 대한 시각을 달리해 접근했다고 보면 되죠.”

그는 허난설헌이 조선이 가부장제로 급격하게 진입할 당시를 살아간 인물이어서 시대로부터 피해를 봤을 뿐 아니라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자면 소수자 인권 침해 정도에 해당될 것으로 내다봤다는 설명이다. 그는 허난설헌은 페미니즘적 시각에 무게를 뒀고, 허균은 민중의식에 중점을 뒀다고 밝힌다. 집필을 하면서 겪은 어려움으로 이야기에 집어넣고 뺄 내용을 가려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조명을 어느 지점에 놓고 해야 할 지 어려워 고민스러웠다는 후문이다. 남매에 대한 소설적 형상화를 달리했다는 것이다.

“‘하늘 꽃 한송이, 너는’에서는 주인공이 허난설헌이지만 그의 몸종을 화자로 내세워 전개해 나갔죠. 성소수자나 억압된 인권 침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 그만큼 집중을 해야 했어요. 더욱이 몸종은 이중의 약자잖아요. 직접적으로 허난설헌을 드러내지는 못했죠. 반면에 ‘허균, 불의 향기’에서는 허균이 무거운 인물이라는 인식이 있어 우선 가독성에 맞춰 집필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역사적 무게감을 온전히 끌어내지 못한 듯해 아쉽죠.”

이 두 장편 모두 이미지가 잘 그려진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는 그는 허난설헌이 첫 장편이어서 자신감을 얻게 돼 잇따라 장편을 집필할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두 권 다 펴낸 지금은 한 바탕 잘 논 느낌이자 무언가 꽉 찬 느낌이 듭니다.”

그는 허균이 전북 부안의 기생 매창과 평생 우정을 맺어가면서 전주를 망라해 전북 지역을 자주 내려온 것이 계기가 돼 결국 부안 정사암에서 ‘홍길동전’을 집필해 이 지역과도 무관치 않다며 성공하지 못한 혁명이라는 측면에서 5·18광주민중항쟁이 겹쳐져 다가왔다는 것도 잊지 않고 들려줬다.

그는 마지막으로 집필 계획을 밝히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두 권의 장편이 마무리된 만큼 이제부터 근현대사를 조망하는데 집중할까 해요. 광주 출신 작가인 만큼 5·18항쟁 등 역사적 맥락을 담은 작품들을 집필해볼 계획입니다.”

이진 소설가는 2018년 11월 조선의 시인 허난설헌을 형상화한 ‘하늘 꽃 한 송이, 너는’을, 지난해 10월에 역적으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허균의 생각을 따라간 ‘허균, 불의 향기’를 각각 펴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