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남시론]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공간은 세월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경제와 기술 수준 향상, 도시에 대한 지향성 변화는 새로운 도시공간 출현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한편으로는 도시공간의 변화요구를 제어하는 다양한 방법도 만들어진다. 따라서 도시가 변화 요구와 제어 사이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가 중요한데, 이 중심에 공공 공간과 경관의 문제가 있다.

도시는 기원전부터 공공 공간의 존재와 아름다움을 중요시해 왔다. 14세기 유럽 각지에서는 그리스, 로마의 고전적인 문화부흥 운동인 르네상스가 일어났고 이는 바로크식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바로크식 디자인은 원근법 등의 시각적 효과를 통한 건물형태와 배치, 가로공간, 광장 등의 디자인 질서를 정착시켰다.

공공 공간은 때론 권력자의 위엄을 연출하는 도구로도 활용됐다. 16세기 초 식스터스 5세가 시각적 효과를 바탕으로 기획한 로마재건 수법이 대표적이다. 또 프랑스 루이14세 시절의 파리시장 오스만이 건물과 땅의 관계, 도로의 원근법을 활용해 조성한 도시 공간구조, 베니스의 산마르코 광장도 경관을 통한 공간의 극적 분위기 연출의 대표 사례로 불릴 만 하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산업적·기능적 합리성이 절대가치가 되면서 도시에도 분업화가 적용됐다. 이는 중세도시와는 전혀 다른 관점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답지 못하다는 많은 비판에 직면했고 도시 디자인 출현으로 이어졌지만 이의 한축인 경관은 가시적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중세와는 달리 공간과 경관을 분리해서 보는 분업적 행위에서 기인한다. 또 현대도시는 다양성과 복합성이 중시되기 때문에 중세의 획일적 독자성과 통일성의 이분법적 관점과는 다르다는 점을 소홀히 한 데서도 연유한다.

이 가운데 하나가 경관을 만드는 기준이 되는 문맥 도출문제다. 도시는 말하는 사람 수만큼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일본 건축가 구마겐고는 도시경관은 질적인 대책이기 때문에 위생적인 도시처럼 구체적 기준설정이 어렵다고 했다. 위생적인 도시는 기준이 되는 수치를 통해 달성될 수 있지만 도시경관은 불량한 요소나 행위를 금한다고 해서 질 높은 환경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도시경관이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면 이 종착점은 균일도시가 된다고 경고한다. 경관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이 기본은 ‘다움’이나 ‘장소성’과 맥을 함께하는 지역성에서 출발한다. 1984년 건축가 필립 존슨은 뉴욕 A&T빌딩 설계 당시 1920년대 건축의 개성적인 머리 부분에서 힌트를 얻었다. 반면 제임스 폴세크는 500파크 에버뉴 건물설계에서 머리 부분의 장식이 없는 20세기 초 모더니즘을 기본으로 했다. 의도는 같았지만, 도출된 결론은 정반대였다. 지역성에 대한 해석이 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맥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지만 결정된다고 해도 어느정도의 독자성을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따른다. 현대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라는 관점도 놓쳐서는 안된다. 도쿄대 도시공학과 야마다 가쿠 교수는 “경관은 통제와 무위, 풍토에 순응과 도전 사이의 문제다. 이 사이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가 문제”라고 했다. 경관은 시각에 의해 지각되 어지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에서 시지각 되어질 가능성이 있는 모든 물적 공간의 형상과 색채, 위치가 대상이다. 이는 다른 감각과 연동, 혹은 종합해 인식된다는 점에서 연동적 디자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또 지키는 경관이냐 만드는 경관이냐의 관점과 대경관, 중경관, 소경관의 레벨도 있다. 문맥을 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마저 없다면 도시경관은 더 혼란스러워진다. 현대 도시는 중세도시와는 달리 다양한 용도와 용적 등이 허용되고 각기 지향하는 형태가 있다. 공개 공지만해도 개별 부지는 물론 인접부지와 연동할 때 경관만을 우선으로 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친환경 건물의 존재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 공간과 경관을 목적으로 하는 지구단위계획의 종상향 문제도 있다. 연도변 건물의 법적 최고 높이와 최하 높낮이 차이가 만든 높이 흐름의 이탈 문제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은 물론, 공간과 경관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이 역시 합의 형성이 있어야 한다. 건축가 구마겐고는 일본 고베처럼 조례를 제정하고 전역의 마스터플랜을 책정하며 지구레벨 계획이라는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을 소개한다. 또 요코하마처럼 도시디자인실을 만들고 행정에 전문 코디네이터를 두는 협의형도 있고, 건축가를 행정에 두어 도시 디자인을 컨트롤 하는 마스터 아키텍트 방법도 있다고 말한다.

도시경관 형성은 도시계획법, 건축법이나 도시계획제도 등의 제도와 도시경관과 밀접한 관련을 갖은 건축의 존재방식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만 한다. 이런 분명함이 전제되지 않고 개별 건물심의에만 의지하면, 과거 미관지구 심의와 같은 양상이 될 수 있다. 경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바탕으로 문화도시에 공헌하는 지역성 있는 경관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