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선사가 맑은 차 한 잔의 맛과 멋을 노래한 대목이다. 초의는 ‘차 마시는 것과 수행하는 것이 같은 맛’임을 뜻하는 ‘다선일미’(茶禪一味)를 기본으로, 차 안에서 부처의 진리를 좇아 온 승려다. 그의 ‘다도 문화’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로 차를 통해 당대 이름난 학자와 문인·예술가들과 교류했기 때문이다.
초의선사와 관련한 자료가 국립광주박물관에 대거 기증돼 눈길을 끈다. 기증자는 박동춘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이다. 그는 초의선사의 다풍을 이어받은 응송 박영희 스님의 제자로, 초의선사 관련 연구에 집중해온 인물이다. 이번 기증품은 초의선사의 친필 저술과 편지·시축 등 169건 364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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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의가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옹기 다관’ |
이번 기증유물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초의선사와 교유했던 인물들이 초의에게 보낸 편지와 시축이다. 19세기 초의선사를 비롯해 그와 교유한 인물들의 정황은 물론 조선후기의 차문화, 풍속, 종교, 문화 등을 풍성하게 담고 있다.
초의선사는 홍현주, 신위, 박영보, 정학연, 권돈인, 황상, 변지화, 허련 등 이름난 학자와 문인·예술가·스님과 교유했다. 여기다 남도로 유배를 온 다산 정약용·추사 김정희 등과도 차와 관련한 깊은 담론을 편지로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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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광주박물관에 초의선사 관련 유물을 기증한 박동춘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특히 초의차를 예찬한 박영보의 ‘남다병서첩’(南茶幷序帖)과 박영보의 스승인 신위의 ‘남다시병서’(南茶詩幷序)는 당시 사대부가 가졌던 차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또 초의선사의 친필 저술과 원본에서 그대로 옮겨 보관한 문헌 등 매우 귀중한 문화재가 기증됐다. 초의선사 친필의 ‘참회법어첩’(懺悔法語帖), ‘직지원진’(直指原眞) 등이 주목되는데, ‘직지원진’은 풍수지리서로 초의선사가 풍수지리에 능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이밖에 초의선사의 다풍을 보여주는 다구 등이 기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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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다병서첩’ |
△5대째 계보 ‘한 눈에’…도서발간·전시도
이번 기증품은 초의선사 이래 5대째 이어지는 다풍의 계보를 보여준다. 초의선사의 다풍은 범해, 원응 스님에게 계승됐고, 응송 박영희 스님이 이어받았다. 응송은 1937년 대흥사 주지로 취임해 20여 년간 봉직했다. 불교정화운동 이후 백화사에 머물며 차와 선리(禪理:선에서 깨닫는 이치) 연구에 매진했고, 특히 초의선사 관련 자료와 차 연구에 힘을 쏟았다. 1985년 ‘초의차’의 보호와 전파를 당부하면서 관련 자료들을 제자 박동춘씨에게 물려줬다.
박동춘은 1979년 응송과 연을 맺으며 차와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1985년 응송에게 전다게(傳茶偈)를 받아 초의·범해·원응·응송으로 이어지는 다풍을 계승했다.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에서 ‘초의선사의 차문화관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로 초의선사 관련 연구에 집중하며, 응송에게 전수받은 초의선사의 제다법으로 차를 만들어 전통차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작업 또한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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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지원진’ |
박동춘 기증자는 “차를 비롯한 조선 후기 문화의 연구에 유용한 자료로 활용되고, 나아가 박물관을 찾는 분들이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광주박물관 관계자는 “이번에 기증받은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조사해 차 문화의 연원과 계보를 연구하고 동아시아 차문화 연구사업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며 “도서 발간 및 전시로 그 성과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기증은 도자문화거점박물관을 지향하는 국립광주박물관이 차 문화를 심층적으로 연구, 우리 문화의 원형을 국내외에 알리는데 중요한 활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