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수년 전 영국 런던에 갔던 때의 일이다. 투어 버스를 타고 설레는 시내 관광에 나섰는데, 일행 중 한명이 안내원에게 런던의 아파트 가격을 물었다. 이 질문을 시작으로 런던 집과 월세 제도 등등 영국 부동산 정책에 대해 질의응답이 끝없이 이어졌다. 유서 깊은 웨스트민스터사원과 빅벤, 대영박물관도 그들의 눈과 귀의 밖에 있었다. 어렵게 간 런던 나들이에서 역사, 문화와 예술은 집과 땅 얘기에 밀려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일침을 가하는 여행가이드 선생의 말씀.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부동산 질문을 하도 많이 하셔서 관광과 더불어 부동산 공부를 따로 합니다.”

지난해 한 노정객이 서울을 ‘천박한 도시’라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 예술, 이야기는 실종되고 오직 집값, 재산 가치로만 평가되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한 말이라 해명했으나 일부 정치인들은 서울을 모욕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천박하다.

2000년대 초반 지금 사는 아파트에 입주했다. 새집의 벽지도 채 마르지 않았는데 눈 밝은 지인들이 남구 봉선동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자고 꼬드겼다. 당시 봉선동 일대는 대단위·대형아파트 신축 바람이 불면서 미분양이 속출, 원 분양가를 수천만원씩 깎아주는 할인분양이 유행했었다. 귀가 솔깃했지만 “더 이상 집 문제에 매달리지 말자”며 완강히 거부하는 남편의 ‘고고한 확신’에 눌려 결국 포기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 동네 아파트 가격은 서너 배 이상이 뛰어 서울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외부 투기세력들까지 몰려 거래 열풍이 분다는데 우리 집은 여전히 냉골이다. 당시에 남편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지 못한 거며 그에게 동조해 쉽게 마음을 접은 내가 원망스러운 게 솔직한 속내다. 부러우면서 때론 배가 약간 아프고, 더 많은 이득을 남기기 위해 또 집을 사고 파는 그들의 여유에 약이 오르기도 한다. 상대적 박탈감에 우울감이라니…. 스스로가 천박하다.

1가구 1주택 보유·거주 원칙을 명문화한 이른바 ‘1가구 1주택법’의 입법 예고 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인 입법 절차에 들어간다. 이 법안을 발의한 한 여당 국회의원은 “1가구 다주택 소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고 이미 제도화된 1가구 1주택 원칙을 명문화하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주로 야당에서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냐”며 색깔론까지 들고 나서 반대를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더 치열해진 정부의 부동산 억제정책은 마치 게릴라전을 연상케 한다. 정부와 여당은 세금폭탄과 거래 규제 등을 무기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수차례 시도했지만 별무 효과다. 부동산 투기세력들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허점을 파고들어 보란 듯이 집값을 쥐락펴락한다. 서울이 막히면 부산으로, 부산이 막히면 광주와 세종으로, 또 광역시 아래까지…. 영락없는 빨치산의 게랄라전이다. 정부의 소탕작전은 연전연패다. 두더지 잡기식, 뒷북 행정의 연속이다 보니 정책에 대한 믿음도 기대도 어려운 상황이고, 전황은 악화일로다. 취지는 정의로우나 이 정부들어 24차례에 걸쳐 나온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70%가 부정적이다. 전망 또한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주택 소유 규제와 더불어 주택공급을 늘려 집값 안정을 도모하겠다고 수차례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어디 그리 단순한 존재였던가. 아무리 가져도 만족함을 모르고, 가지면 더 갖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구 소련을 필두로 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인간의 소유욕과 탐심을 제도로 제어할 수 있다는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신봉하다 결국 몰락했다. 문제는 소유의 양이 아니라 소유의 공정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부동산과의 전쟁에 앞서 얼마나 공정하게 소유하도록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했어야 한다. 또 국민들과 그것에 대해 소통하고 설명했어야 한다. 소외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해시키고 안심시켰어야 한다. 그것을 생략하고 곧바로 전쟁부터 시작한 모양새다.

배가 고픈 것은 참아도 배가 아픈 것은 못 참는 것이 우리네 보통 사람이다. 보통사람의 눈높이와 생각에 맞춰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것은 정치학을 넘어 상식이다. ‘나 혼자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이 한걸음’을 표방하는 정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민중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그 초심과 원리를 다시 생각했으면 한다. 정치의 대상도 그들이지만, 권력도 백성에게 나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