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남시론] 지난 12년간,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세 정부에 걸쳐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쏟아부은 예산이 24조가 넘는다. 이는 4대강 사업에 들어간 예산보다 많은 돈이며, 연간 2조 이상의 국민 혈세가 저출산 문제 해결에 투입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엄청난 재정을 투여하고도,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다. 저출산 문제에 대한 무능에는 보수도 진보도 매한가지였다. 오히려 한국의 출산율은 갈수록 더 낮아져, 올해는 0.74명에 이를 것이라는 우울한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는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출산율이며, 아마 전 세계에서도 가장 낮을 것이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12년 동안 보수 진보 나눌 것 없이 정책의 방향과 기조가 경제적 접근을 기반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낮으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가? 국가의 경쟁력이 약해진다. 이 국가 경쟁력이란 노동력을 가진 생산인구를 뜻한다. 즉 왕성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국민의 숫자가 줄어들게 되기 때문에 국가 전체의 생산력이 저하되고, 이 생산력의 저하는 곧 국가 경제의 내리막길을 뜻하는 것이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며, 이 증가된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젊은 세대들에게 채무가 된다. 이 부정적 전망을 바꾸기 위해 정부는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출산을 적극 권장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적 접근에 기초한 정책은 한국에서 백이면 백 실패하기 마련이다. 왜냐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출산을 거부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감성적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 아이를 낳으면 한 명당 얼마씩 돈을 준다고, 셋째 아이부터는 정부가 대학 등록금까지 다 대준다고 해도 내키지 않는다. 왜냐면 그런 경제적 접근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세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가? 정부는 우선 크게 두 가지 정책에 당장 집중해야 한다.

첫째는, 보육을 국가와 공동체가 온전히 책임지겠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공공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혁명적인 확대가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낳아도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없다. 사립 어린이집과 사립 유치원은 필연적으로 이윤 창출을 가장 우선에 둘 수밖에 없다. 잊을만하면 뉴스에 다시 등장하는 어린이집 아동학대나 싸구려 급식 문제는, 이윤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사립 보육체계의 필연적 결과물이다. 서울뿐 아니라 이제는 지방 소도시에서도, 국공립 어린이집이나 병설 유치원에 아이를 맡기기 위해서는 부모와 조부모가 모두 나서서 새벽부터 줄을 서야 한다. 아니 대체 나라에서는 제발 아이를 낳으라고 그렇게 재촉하면서, 막상 낳으면 보육을 걱정해야 하는 이 현실은 또 무엇인가. 현 정부에 제안한다. 당장 내년부터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에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의무적으로 병설하게 하라. 물론 그렇게 하면 전국의 수많은 사립 어린이집과 유치원 원장들과 종사자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그러나 그 저항이 무서워서 국공립 보육체계를 혁명적으로 확장하지 않고 지금처럼 민간에 맡겨둔다면, 아이를 낳으려는 젊은 부모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둘째는, 모든 직장에서 신생아의 엄마 아빠 둘 다의 유급 출산휴가를 최소 1년 이상 의무적으로 보장하라.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젖먹이를 사설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해야 하는 젊은 부모의 찢어지는 마음을 한 번 헤아려보라는 말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기면 되지 않냐고? 모든 가정이 조부모에게 육아를 부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늙으신 조부모는 또 무슨 죄가 있어 손주들 육아를 전담해야 하나? 신생아는 적어도 돌을 지나기 전까지, 혹은 가능하다면 두 돌까지는 부모가 살을 맞대고 기르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장에서의 유급 출산휴가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현재 한국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도시는 세종시이다. 세종시의 출산율은 1.4명으로, 전국 평균의 거의 2배에 달한다. 왜 그럴까? 공무원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 산하의 공무원들은 다른 어떤 직장보다 부모가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 하지만 민간 기업에서는 규모가 큰 대기업에서도 출산휴가를 1년 쓰기가 어렵다. 게다가 출산휴가를 쓰면 급여의 절반도 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이걸 국가가 보전해줘야 한다. 어느 직종이든, 규모가 크든 작든, 아이를 낳으면 누구나 1년 동안, 현 급여의 80% 수준을 보전 받으면서 출산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면, 장담컨대 출산율은 폭발적으로 급등할 것이다.

이 두 가지, 국공립 보육체계의 혁명적인 확대와 모든 직종에서의 출산휴가 1년 의무화가 이루어진다면, 젊은 부모들은 ‘아, 우리가 아이를 낳아서 길러도 행복하겠구나’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젊은 부모들이 아이를 낳을 때 원하는 것은, 경제적 보상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감성적 희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