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은 대학자와 청년학자로, 스물 여섯살 나이차를 뛰어넘어 13년 동안 애정과 존경을 담아 편지를 주고 받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558년 명종 13년 10월 퇴계는 지금의 국립대 총장격인 성균관 대사성이었고, 고봉은 과거에 급제한 지 얼마 안된 청년이었다. 퇴계는 고봉을 벼슬에 천거하기도 했다. 인스턴트화되고 목적성 있는 인간 관계 일색인 오늘의 시점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법하다.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교류의 한 형태가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이들의 첫 편지는 그해 12월 퇴계가 고봉에게 첫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된 뒤 13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됐다고 한다. 고봉 입장에서는 부모뻘 되는 분과의 교류였으니 매우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교류를 나이와 직위를 초월한 ‘영혼의 교류’로 단정짓는다.

여기서 거창하게 퇴계와 고봉의 편지 주고 받기는 오늘날과는 다르게 느림의 미학이었을 터다. 이들은 더더욱 느림의 편지를 주고 받았으되,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빨랐고, 깊이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코로나19 정국이니만치 퇴계와 고봉의 서신 교환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그런 까닭에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김영두 옮김, 소나무 刊)를 간만에 훑어봤다.

‘삼가 건강은 어떠신지요. 저는 외람되이 두터운 은혜를 입어 겨우 관직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번잡한 사무에 시달려 본래 공부를 버려두고 있으니,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부끄럽고 두려울 뿐입니다’(126쪽)라는 내용이 나온다. 고봉이 퇴계에게 보낸 편지내용이다. 고봉은 소소한 듯 하지만 번잡한 일상으로 인해 본연의 본업인 공부를 하지 못해 부끄럽고, 두렵다고 퇴계에게 밝힌다.

그러자 퇴계는 ‘저는 늙음과 병이 함께 하여 여러 증상이 번갈아 달려드니, 눈 쌓이고 얼음 덮인 골짜기에서 제 몸 하나 건사하느라 애를 씁니다.…중략…다만 본래 글을 깊이 읽지 않았기 때문에, 의를 보는 데 미흡한 곳이 많을 따름입니다. 해가 바뀌려 합니다. 덕과 의리를 갖춘 모습이 점점 드러나 좋은 일이 많기를 바라면서, 이만 줄이며 삼가 절합니다’(127쪽)라고 답신한다.

답신을 보면 퇴계는 자식뻘 되는 고봉에게 예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었다면 불가할 것이다. 오히려 공부를 못했다고 하는 고백에 위로하면서 해가 바뀌는 시점에서 좋은 일이 많았으면 하고 덕담을 건넨다.

또 퇴계는 ‘주자는 왕단명이 휴가를 얻은 것을 기뻐하시면서, 학문을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데 더욱 힘쓰라고 권하셨습니다. 바라건대 그대도 깊이 생각하고 힘써 자신을 돌이킨다면 더할 나위 없는 다행이겠습니다. 끝으로 부디 자신의 몸을 지키고 아끼시기 바랍니다’(306쪽)라는 내용을 고봉에게 전한다. 학문정진과 심신수양의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깊이 생각하며 성찰하고 몸을 아낄 것을 권한다.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 중 이를 얼마나 실천하며 살아갈까를 묻는다. 답하지 않더라도 거게 하루 하루 사느라 여념들이 없을 터다. 코로나19를 핑계될 것 같으면 아예 말을 꺼내지 않았으면 한다. 옛 시대 보건의료는 더 열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퇴계와 고봉의 편지는 사상과 학문에서부터, 삶의 이치 그리고 일상에 이르기까지 두루 담겨져 있다. 이들의 편지에서 인간적 면모와 삶의 향기를 발현할 수 있다. 옛 시대와 비교하기는 무리라는 점을 전제하며, 오늘날이야 문자니, 카톡이니 하는 문명의 이기들로 인해 빨라지고 편리해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같은 인간관계의 깊이는 "글쎄"다. 깊지 않다의 답변치고는 옹색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속이 다 드러나 보이는 삶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삶이 옅을수록 그 향기는 풍기지 않는 법이다.

이 두 사상가의 편지는 필자에게 매우 느리지만 비대면 접촉의 고전처럼 다가왔다. 이런 느낌으로 다가온데는 코로나19 때문인 듯하다. 바이러스로 멈춰버린 경자년이 지고, 신축년이 다가오고 있다. 고전을 통해 오늘의 시대를 반추하면서 ‘새로운 길’이 열리기를 희망하는 한편, 퇴계의 편지글처럼 코로나19 종식 때까지라도 사회구성원 모두 ‘몸 건사’를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위드 코로나 시대, 올바른 삶의 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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