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역시장 중앙광장에 의문의 부스 하나가 들어섰다. 그 이름은 ‘사막여우 비밀우체국’이다. 이곳에는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요?’, ‘이직할까 고민 중이에요’ 등 저마다 진 삶의 고민들이 날아든다. 철저하게 익명이 보호돼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들을 쉬이 풀어놓는 창구가 돼준다.

(사)청년문화허브(대표 정두용)가 책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영감을 받아 5년여 이어 온 ‘사막여우 비밀우체국’이 양림동 펭귄마을에 이어 송정역시장에도 들어섰다. 광산구가 프로젝트 취지에 적극 동감하면서 지원을 약속해 이뤄낸 결실이다.

소소한 일상의 대화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 진지한 고민까지 ‘사막여우 비밀우체국’의 자원 활동가들은 모든 편지에 답장을 보내준다. 답장의 목적은 궁극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다. 그저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에 집중한다. 사연편지의 말미에는 종종 이렇게 쓰여 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쓰다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요’ 라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귀한 경험도 했다. 부모님의 불화로 피폐해진 삶을 털어놓은 이가 있었다. 그는 “아무래도 어른이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부정적인 암시를 써두었다. 그 편지 분량만 해도 A4로 네 장 가득이었다. 활동가는 절실한 마음을 담아 답장을 썼는데, 몇 년이 흐른 뒤 이 활동가를 찾는 회신이 왔다. “무사히 어른이 됐다. 감사하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사연의 주인공은 물론이고 자원 활동가들에게도 기적 같은 기억이다.

이밖에도 ‘답장을 받고 펑펑 울어버렸습니다.’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하는 회신들이 줄을 잇는다. 마음이 맞으면 답장을 보낸 활동가와 계속 편지를 주고받기를 희망하는 사연자나 몇 년이 지난 후 답장해줬던 활동가를 다시 찾는 이들도 있다.

양림동 펭귄마을에 설치된 ‘사막여우 비밀우체국’

재미있는 것은 활동가들은 모두 20~30대의 평범한 일반 시민들로, 상담사 자격을 갖추거나 전문성이 있는 집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5년 간 3000여 통의 편지들이 오고 갈 만큼, 광주 시민들, 특히 청년들의 고민 상담소가 돼 주고 있다.

정두용 대표는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는 ‘그저 누군가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기만 해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될 때가 있잖아?’라는 대목이 나온다. 5년간 비밀우체국을 운영해 오며 알게 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스스로 본인의 답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사막여우 비밀우체국을 통해 위로와 응원의 따뜻한 마음을 받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간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프로젝트를 중단할 수 없었던, 비밀우체국의 존재 이유이다.

편지는 매주 화요일 수거되며, 편지를 보낸 후 약 5일 안에는 답장을 받을 수 있다. 사막여우 비밀우체국에 직접 찾아가기 어렵더라도 손편지(광주 동구 궁동 52-2, 3층 청년문화허브 사막여우 앞), 이메일(foxletter@daum.net)을 통해서도 편지를 보낼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사막여우 비밀우체국’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