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은 서해의 중심 고을로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바다와 섬은 조기와 새우 등 해산물의 곳간이었으며, 섬 사이의 뱃길은 모든 물산의 통로로서 번성했다. 바다로부터 강을 따라 들어온 불교문화와 산과 강을 벗 삼아 이룬 유교문화는 영광 사람들의 삶에 깃들었다.

이처럼 영광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유·무형의 역사자원과 천 년의 시간을 이어 내려온 문화유산들을 한 눈에 조망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오는 2021년 1월17일까지 국립나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 마련된 ‘신령스러운 빛 영광(靈光)’이 그것.

고대 영광 지역 문화를 상징하는 ‘새 무늬 청동기’를 비롯해 고려시대 중국과의 교역 흔적을 증명하는 ‘청자 향로’, 불갑사의 불교 보물들, 1915년 안중식이 그린 ‘영광풍경도’까지.

오랜 역사만큼이나 재미난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250여 점의 영광의 보물들이 출품, 관람객들을 기다린다.



△‘새’를 신성시 했던 마한사람들

‘업경대’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게 있다. 바로 실제 크기 5.5cm의 ‘새 무늬 청동기’다. 영광 대마면 화평리 수동 널무덤에서 출토된 이 문화재는 당시 마한 사람들이 쏟은 ‘새’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가장 윗단에는 오리로 추정되는 새가 줄지어 가고, 그 아래로 연속되는 구슬무늬, 마치 새싹이 피어나는 것과 같은 소용돌이 모양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중앙에는 새 두 마리가 마주 보고, 그 위로는 다른 새가 날아오는 모습이 표현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성 동외동 유적에서 발견된 유사한 청동기를 바탕으로, 복원시킨 콘텐츠를 영상으로도 만나본다.

그 옆으로는 ‘새 무늬 토기’가 자리했는데,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인 ‘빗살무늬토기’와는 다른 모습이라 재미있다. 빗살무늬토기가 무늬새기개로 누르거나 그어서 점·금 등의 기하학 무늬를 새겨 넣은 것이라면, ‘새 무늬 토기’는 토기 겉면을 검게 그을린 ‘흑반’을 활용해 모양을 냈다. 일반인이 보더라도 ‘새를 그렸구나’ 싶을 정도로, 한 마리 새의 형태가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있어 흥미롭다.



△바다서 건져 올린 국제 교류 흔적

안중식 作 ‘영광의 풍경’

고려시대의 영광 섹션에서는 그 시절 국제 교류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영광 낙월도 해역은 예로부터 풍랑이 심해 항해가 어렵다고 알려져있는 지역이다. 낙월도부터 전북 부안 위도까지의 바다를 ‘칠산바다’라 부르는데, 1970년 후반부터 이 부근 해역에서 유물의 발견·신고가 있어 왔다.

강진과 해남 등의 자기들이 중앙으로 올라가다가 침몰한 것으로 추정한다. 여기서는 고려청자를 중심으로 백제·조선시대까지 다양한 시대의 유물이 발견됐다. 주목할 점은 중국 청자가 출수됐다는 점이다. 이번에 출품된 청자 향로 두 점은 원나라 유물로, 당시 영광 바닷길로 통했던 국제적인 교역의 흔적을 알 수 있다.

특히 바다에서 건져 올린 출수품들은 거의 완형의 형태로 남아있어 더 귀하다. 땅에서 출토된 것들은 쓰다가 버린 것들, 혹은 망쳐서 깨져버린 것들도 종종 함께 발견되는데, 배에 오른 것들은 ‘상품’으로 꼽힌 것들이 대부분이라, 시대별 자기의 문화적 가치를 탐구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지옥의 거울 ‘업경대’

‘오리모양토기’

영화 ‘신과 함께’를 본 사람이라면, ‘업경대’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염라대왕은 이 ‘업경대’를 통해 죽은 자의 지난 삶들을 본다고 전해지는데, ‘신과 함께’ 속 주인공들은 이 거울을 통해 생전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이번에 출품된 ‘업경대’는 영광 불갑사 보존 문화재다. 총 길이가 97cm로 원래는 암사자·수사자 한 쌍이 있는데, 이번에는 수사자만 관람객들을 맞는다. 받침대는 수컷의 사자 형상으로 활짝 뜬 눈, 벌렁거리는 코, 큰 어금니를 드러내며 씩 웃는 얼굴이 해학적으로 표현됐다. 마치 과거의 착한 일을 칭찬하는 표정이다. 중앙에는 구리거울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거울을 고정시켰던 못만 남아있다. 거울의 주변은 구슬 무늬가 돌려져 있으며 불꽃 무늬가 솟아오르고 있다. 불꽃은 지옥과 죄의 사라짐을, 업경 아래의 연꽃은 새로운 탄생을 상징한다.

전시실 한편에 마련된 ‘영혼의 여정’ 코너에서는 불갑사 소장 업경대와 함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실감형 영상을 감상하는 것도 재미다.



△1915년의 풍경…‘병신춤’ 유물까지

박요아 作 ‘오가굴비’

근현대 영광 섹션에서는 1915년 영광의 모습을 10폭 병풍에 담은 대작 안중식의 ‘영광의 풍경’을 만나볼 수 있다. 영광의 이름난 부호이자 서화애호가였던 조희경과 조희양 형제는 사촌형제인 안중식에게 영광의 풍경을 담아줄 것을 청했다. 이에 안중식은 당시 영광의 풍경을 한 번에 조망할 수 있었던 2층 누각 ‘체화정’에 올라, ‘영광풍경도’를 남겼다.

서양식 원근법을 이용, 풍경의 현장감을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이상적인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이 작품은 전통화풍을 벗어나 변화를 모색했던 안중식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힌다.

아울러 서기보가 지은 영광팔경을 주제로 해, 영광향교의 고목, 꽃놀이를 가는 선비, 쟁기질하는 농부, 젓갈항아리를 지게에 진 상인의 모습까지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작품 맞은편으로는 ‘체화정’ 현판을 제작해 설치, 관람객들의 시선에서 영광팔경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새 무늬 청동기’

이밖에도 ‘병신춤’의 대가 공옥진이 사용한 악기와 원고, ‘굴비’를 화폭에 그린 박요아 작가의 ‘오가굴비’ 작품들까지 영광을 빛내 온 ‘영광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김준성 영광군수는 “이번 전시는 곳곳에 산재해 있는 영광의 대표적인 역사문화자료를 한 자리에 모아, 군의 찬란한 유산을 내보이는 자리”라며 “특별전을 계기로 영광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체계적으로 연구·보존·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전시 축사를 통해 밝혔다.







영광=정규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