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 녀석은 딱지치기와 자치기를 잘했다. 그가 우리 동네로 이사 오기 전까지 무슨 놀이를 하든 늘 대장이었던 나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자치기를 하기 위해 편을 가를라 치면 아이들의 시선은 온통 녀석에게 향해 있었다. 녀석과 한 편이 되고 싶은 속종을 드러낸 것이었다. 나는 짐짓 무관심한 척 했지만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속상한 점은 녀석의 실력을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촘촘히 막는다고 해도 녀석이 날리는 새끼 자(짧은 나무토막)를 잡을 수 없었다. 그는 한손치기나 돌려치기로도 자를 원하는 곳에 자유자재로 보내는 능력을 발휘했다. 녀석에게 200자, 300자 정도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워보였다.

그래도 자치기는 항상 긴장감이 넘쳤다. 녀석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분명한데도 두 팀의 점수 차는 이상하리만치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놀이의 중간에는 우리가 녀석의 팀을 앞선 적도 적지 않았다. 그것이 골목대장인 나를 생각하고 놀이의 재미를 위한 녀석의 웅숭깊은 배려였다는 것을 안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었다.

놀이에서 편을 가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하고자 하는 놀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승부가 판가름 날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게는 자신과 비슷한 상대와 가위바위보 등을 통해 편을 가르는 과정을 갖는다. 같은 성별이나 같은 학년을 고려하는 것인데 그래야 긴장관계가 형성되고 승부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왜 그렇게 승부에 집착했는지 모르겠다. 이겼다고 무엇을 얻거나, 졌다고 무엇을 잃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놀이에서 졌다며 늘키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눈물은 그 때 뿐이었다. 오늘의 적(?)이 내일이면 같은 편이 되어 새로운 놀이를 즐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스포츠나 놀이에서 흔히 쓰이는 ‘편가르기’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편가르기는 정치계는 물론이고 경제계, 학계 등 사회 전반에서 폭넓게 나타나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 여당과 야당의 반목과 대립이야 눈귀 아프게 겪었던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사회 구성원들간에 벌어지고 있는 ‘네 편 내 편’ 가르기는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처럼 느껴진다. 나와 의견이 같으면 한없이 관대하고 크고 작은 실수도 감싸주지만 반대의 경우 가혹하게 등을 돌리기도 하고 진실은 눈감은 채 ‘아니면 말고 식’의 왜곡되고 비약된 여론을 만들어 광범위하게 퍼뜨리기도 한다.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이같은 편가르기가 소수의 구성원이나 일부 단체에 그치지 않고 전 국민으로 확대됐을 때다. 국민 간 대립과 갈등이 노골화된다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법과 제도로 바로잡을 수 없는 것이기에 코로나19 팬데믹 현상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 될 것이다.

사회 제도나 현상에 대한 의견이 ‘예’와 ‘아니오’라는 선택지만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의 주변 환경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분법적인 구분법은 선명성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양하고 복잡한 현상을 지혜롭고 바라보고 세밀한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잘못된 신호체계로 작동될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는 한국사회가 선진국으로 도약해가는 과정에서 잃어 버려서는 안될 소중한 것 중 하나는 ‘성찰’이었으며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자신의 이익에 대한 계산’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무슨 일이든 손익계산을 먼저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애면글면하다 보니 ‘만인 대 만인의 투쟁사회’가 돼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우선이다. 자신의 이익을 앞세워 편을 가르는데 급급하기보다 나와 남이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커지면 화합과 통합의 하모니가 이뤄진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시도 통합문제, 광주 민간공항의 무안국제공항 통합 이전 등을 둘러싼 광주와 전남의 갈등 역시 존중과 배려의 틀 안에서 해법을 찾는 자세가 우선돼야 할 것이다.

편가르기는 개인과 사회, 국가발전의 장애물이다. 편가르기는 재미있는 놀이에서 그치면 된다. 오늘은 네 편이었지만 내일은 내 편이 될 수도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