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기선’이란 단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대부분 기선제압을 의미하는 機先, 움직이는 배를 의미하는 汽船, 몇 갈래로 갈라지는 선로나 길을 의미하는 분기선의 岐線으로 알고 있다.

토지의 경계를 표시하고 있는 지적도의 기초측량 방법이 삼각측량이다. 삼각측량에서 한 변의 길이가 基線이다. 국토의 길이를 정확하게 검정하기 위해 설치한 기선척(基線尺) 즉 거리를 측정하는 잣대이다. 기선은 모든 측량에서 필요하다. 지적측량 뿐만 아니라 공공측량, 일반측량, 토목측량, 기초측량 등의 성과에 영향을 끼친다. 특히 최초로 측량기술이 도입된 1910년도에 실시한 기선측량은 향후 지적(地籍)의 표석을 다지는 중요한 근간이 됐다. 당시 전국 13개 기선을 설치했는데 남한지역에 6개, 북한지역에 7개를 설치해 대삼각본점측량에 사용됐다. 그러나 8·15해방과 6·25를 거치면서 대부분 망실돼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 지역에 있는 영산포기선과 강원도에 간성기선이 남아있다. 물론 이 두 기선도 복구돼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기선은 곧 현대 지적의 뿌리이고, 공간정보의 시초이다. 영산포기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고자 한다.

영산포기선은 1912년 3월 13일부터 같은 해 5월 11일까지 약 두달에 걸쳐 기선측량을 실시했다. 기선 길이는 3.4㎞, 동단점과 서단점이 있다. 동단점은 전남 나주시 관정동 승학마을에서 북쪽으로 약 100여미터 지점 논 한가운데에 있다. 서단점은 영산대교에서 동북쪽으로 약 60미터 지점의 영산강 안쪽에 있다. 기선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고저차가 없이 4㎞ 정도의 평탄한 직선 구간이 확보되고 지반이 견고해야 한다. 지금은 영산강 제방이 설치돼 동단점과 서단점이 시통되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평탄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영산포기선 복구사업은 민간 학술모임의 역할이 컸다. 전남 지적직 공무원과 지적공사(한국국토정보공사)직원으로 구성된 ‘정지회’가 앞장 섰다. 영산포기선에 대한 복구계획을 수립하고 1988년 동단점에 대한 문헌조사와 지역주민들의 수소문을 통해 대략적인 위치를 확인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오래전에 경기정리사업으로 기선점의 흔적조차 없었다. 탐문과 자료조사를 반복한 끝에 오랜된 지적도에서 위치를 확인 할 수 있었다. 토지소유자의 승낙을 얻어 현지복원측량을 통해 땅속에 묻친 부채꼴 형태의 보호석과 반석을 찾았다. 1910년도에 설치된 기선점이지만 외부충격과 압력을 받았을 때 이겨낼 수 있도록 과학적인 원리에 의해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확인이 가능하도록 복원해 관리하고 있다.

서단점 역시 지표상 어디에도 기선점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조사된 자료를 유추해 보면 영산강 제방 안쪽에 있어 그 동안 영산강 정비사업과 홍수로 유실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다 1990년도 여름 인근 지적삼각점을 기준으로 위치를 확인한 결과 제방 안쪽에 있을거란 확신이 있었다. 이후 4년간의 준비와 정밀측량을 실시해 1994년 6월 5일 그 모습을 발견했다. 서단점과 같이 보호석과 반석 등 과학적인 원리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확인하고 국토지리정보원의 지원을 받아 견고하게 복원을 완료했다. 2011년 4대강살리기사업 추진 시 수몰지역으로 편입됨에 따라 훼손 위기에 다시 몰렸었다. 그러나 지역 언론인의 관심과 지적 원로들이 힘을 모아 다시 한번 복원하기로 했다. 당초 기선척 표석을 아래에 묻고 높이 값만 달리 해 7m정도 높여 새롭게 설치한 모습을 영산포에 가면 누구나 볼 수 있게 됐다. 올여름 긴 장마와 잦은 태풍으로 영산강 역시 수해 피해가 있었다. 혹여나 해서 서단점을 확인해 보니 다행히 큰 훼손은 없었다. 보호시설 일부가 훼손되긴 했으나 간단한 보수만 하면 될 것 같다.

기선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지금은 과거에 사용했던 기선점을 사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측량이 가능하다. 위성측량 GPS 등 측량기술의 발달로 내 위치와 거리를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측량기술과 현재의 측량 기술은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적경계는 과거에 만들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측량기술이 아무리 발달된들 과거 만들어진 과정이나 절차를 모르고는 전부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번 달 10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 동안 지적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측량기술 교육을 실시한다. 이날 조금이나마 이해를 돕고자 영산포기선을 둘러볼 계획이다. 올해 말로 영산포기선 복원에 힘쓴 마지막 정지회 회원이 공직을 떠난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이다. 아무리 슬픈 역사라도 그 역사를 잊으면 안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산포기선은 1912년 일제강점기 시대에 만들어졌다. 일재 잔재물을 넘어 우리에게 소중한 근대문화자산이다. 보존 가치가 충분하다. 한 번쯤 역사를 상기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