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덕담이 무색할 추석이 될 듯하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코로나로 이번 추석은 가족 간에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할 형편이다. 잠깐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그치길 바랐지만, 기약 없이 장기화되면서 많은 국민이 힘든 날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라는 갑작스럽고 특수한 상황 때문에 정부는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내렸다. 국가로서는 확산 방지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지만, 대비할 시간도 없이 대상이 된 시설과 업종의 입장에서는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폭력이라고 느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고 해도 반발을 부르는 행정보다는 양해와 설득으로 호응하는 행정을 펼쳐야겠다는 생각이다.

지난달 말 광주시가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에 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하자, 광산구는 사무관급 간부공무원이 339개 관내 교회에 대한 현장방문을 통해 공문을 전달하고 양해를 구하며 직접 설득에 나섰다. 그간의 사회적 거리두기 반복시행으로 지친 종교시설에 행정명령서를 전달하는 방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55명의 간부 공무원이 교회를 방문, 담임목사를 면담하고 취지를 설명하며 협조를 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대부분 적극 행정에 공감하고 예배 중단에 동참하거나 온라인 예배로 대체했다. 한 목사는 “간부공무원이 직접 찾아와 협조를 요청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코로나는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꾸고 있지만, 앞으로는 행정도 공급자 중심의 일방적인 통보보다는 시민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교감행정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SNS가 발달하며 행정도 소통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공권력의 신뢰도를 높이고 진정성을 얻기 위해서는 겸손하고 정중한 행정력이 필요하다.

필자가 말하는 ‘겸손한 행정’이란, 일방적으로 고지하는 것보다 먼저 이해와 협조를 구하고 설득하는 공권력을 의미한다.

상호양해 하에 정책이 추진된다면,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수용성이 높아진다. 기꺼이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자발적 인내와 호응이 생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도 않고 결과만 통보한다면 오히려 반발을 일으키기 쉽다.

광산구는 지난해 장록습지에 대한 공론화를 통해 주민의 오해와 갈등을 종식시키고 동의를 이끌어내는 소통행정으로 주목받았다. ‘개발’과 ‘보전’이라는 첨예한 갈등 속에 1년여 기간 동안 현장조사, 주민 간담회, 공개 토론회 등을 통해 여론을 수렴하고 숙의 과정을 거쳐 최종 여론조사로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코로나19가 계속되다 보니 뜻밖의 변화도 생긴다. 바로 행정을 보는 시민의 눈이 따뜻해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비판적 이미지가 강했지만, 지금은 많은 시민들이 공직자들을 응원하고 있다. 행정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졌다. 이럴 때 잘 해야 한다. 공권력이 겸손해지고, 정중하게 설득하는 자세를 가질 때 시민은 행정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중용에는 ‘곡능유성(曲能有誠)’이라는 구절이 있다. 작은 일이라도 지극히 정성을 다하면 결과적으로 자신과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소명과 권한이 주어진 공직자라면 귀 기울여 볼만한 대목이다.

겸손한 공권력이 결과적으로는 훨씬 힘 있는 공권력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민주사회가 발전할수록 수용성 높은 법치주의 실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