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코로나19로 세계를 놀라게 한 것 중 하나가 미국 보건의료체계의 허술한 모양새였다. 이런 문제점은 2001년 911테러 후 이미 제기된 바 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영화 ‘시코’를 통해 미국의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고발했다.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병에 걸리면 중산층의 삶까지도 몰락하게 만드는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앵글에 담았다.

특히 911테러로 인해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지만 미국이 치료를 외면한 사람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캐나다와 쿠바에 입국했더니 국적과 무관하게 무료로 치료해주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면서 많은 미국인들은 탄식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미국 의료제도의 민낯이 드러나고 사회적 이슈가 돼 오바마 케어가 시행되면서 좀 나아지는 듯했지만 공화당이 집권하자 오바마 케어 이전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이렇듯 미국의료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지만 개혁에 실패하고 오늘의 팬데믹 재앙을 맞은 것이다. 미국의 사례는 한번 굳어진 사회제도는 관성이 있어 바꾸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대응했지만, 그 과정에서 공공의료체계의 미비점이 드러났다. 특히 보건의료체계의 강화, 지역불균형 해소, 의료인력 중 의사수의 보강이 절실한 문제로 도출됐다. 이렇게 노출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제도정비를 추진하면서 의사단체로부터 강력한 저항을 받아 급기야 불법 집단휴업사태까지 이르렀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참담했다.

우리 사회의 소위 엘리트집단이라는 의사들의 천박성에 놀라고,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공권력이 허수아비인 것을 목도 했을 때는 낙담했다. 거기다 특권을 요구하는 세력에 밀려 없었던 일로 겨우 봉합하는 정치권의 지도력은 공정사회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수준에서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다만 우리가 미처 큰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번 시련을 그간 우리 사회가 안고 있었던 문제들을 수면위에 올려놓고 검토할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번 시련이 국가개조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공공의료체계, 전문직제도, 학벌사회, 지역불균형, 국민참여 방안 등이 큰 틀에서 재 논의돼야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공공의료체계는 미국보다는 낫지만 국민 누구나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는 건강복지를 실현하는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

우리 사회가 의사 등 전문직의 기득권을 과도하게 보호한 나머지 전문직 서비스시장이 왜곡되고 특권화 됐다. 전문직 입문의 문호를 개방하고 다양한 경로를 개발해 서비스 질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안다. 또한 수능 한 문제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는 대입선발제도로 인해 즐거워야 학창시절을 친구와 경쟁하면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우리 후세들의 족쇄를 풀어주는 교육혁신이 절실하다. 경쟁방식으로 키워온 소위 성적 상위 1%의 학생들의 소름끼치는 이기적인 면면을 분명히 보았지 않은가.

지역 불균형 해소문제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공공의료 뿐만 아니라 지역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전반적인 불균형해소는 대한민국 선순위의 과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모든 공론의 장에 시민의 참여가 확고히 보장돼야 한다. 논의 테이블의 과반 이상이 시민 대표에게 주어져야한다. 그래야 주권자인 시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해자집단의 횡포를 막을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 입문을 결심한 계기는 중병에 걸렸는데도 병원비가 없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지켜보면서였다고 한다. 세상을 바꿔보자고 정치에 나섰고 대통령이 됐지만,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는 미국사회 건설의 꿈은 미완성으로 끝났다.

분명한 것은 이 잘못된 제도를 뜯어고치지 못한다면 미국은 희망이 없고 살만한 나라가 못된다. 하지만 미국이 안됐다고 한국의 국가개조가 안 될 이유는 없다. 시민이 연대해 새로운 촛불을 들면 미국은 못해도 한국은 할 수 있다. 그것이 한국의 저력이다. 좋은 나라는 정부도 정치인도 아닌 깨어있는 시민들이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