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꾸준한 창작활동을 펼쳤던 정산 윤애근 화가(한국화·1943∼2010)의 10주기를 맞아 그의 삶과 회화세계를 조명하기 위한 기획초대전이 열린다.

광주 은암미술관은 예술가적 열정이 넘치던 화가이자 교육자로 평생을 보낸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을 맞은 가운데 교육자로 후학을 양성했고, 화가로 지역 미술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기 위해 10주기 회고전을 9일부터 8월3일까지 미술관 1·2 전시실과 유튜브 은암미술관 채널에서 ‘공(空)-생명의 겹’이라는 타이틀로 진행한다고 8일 밝혔다. <본보 7월2일자 17면 참조>

전시에는 예술가적 열정이 넘치던 화가이자 교육자로서의 길을 걸었던 그의 대표작 38점과 아카이브 자료들이 선보인다. 전통적인 인물화와 수묵화 작업에 집중하면서 독창적 회화를 구축한 그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다.

‘공(空 -식영정(息影亭)’

그의 미술환경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으로부터 출발하게 된다. 3남 5녀 중 막내로 1943년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서 출생, 여덟 살이 되던 해에 한국전쟁이 발발해 어린 나이에 전쟁의 참상을 직접 체험했다. 전쟁 중 구호물자로 나온 크레파스로 아동미술 실기대회에 나가 창경원을 그려 우수상을 받기도 했으며, 수원여고 시절 각종 대회에서 큰 상을 수상하면서 예술가를 꿈꾸게 됐다. 이는 그에게 단비와도 같은 기억이 됐다. 그후 열심히 미술공부에 집중해 국내 최고의 미술대학인 홍익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갑자기 기울어진 가세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의 꿈은 잠시 보류됐다. 출판사에서 삽화를 그리는 일을 했다. 다행히 그는 이듬해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의 전신인 서라벌예술대학에 입학하면서 또 다시 예술가의 꿈을 실현시킬 기회를 잡는다.

그는 여러 시기의 파고를 넘으며 자신만의 회화를 일군다. 청년기였던 1960년대는 사회적으로 매우 빈곤하고 혼란이 가중되던 시대였지만, 그럼에도 타고난 끼와 예술가적 열정으로 화가로서의 꿈을 하나 하나 실현시켜 나가기 시작한다. 그 결과 1963년 ‘군선’을 위시로 1964년 ‘삼밭’, 1965년 ‘갈등’, 1966년 ‘시장’ 등 연이어 국전에 입상해 미술계로부터 주목을 받게 된다. 그는 이 무렵 주로 일상적인 모습들을 진지하고 담담하게 수묵화로 그려냈다.

‘공(空)-조율(調律) II’

이어 1970년대부터 화풍에 변화를 가한다. 이 변화는 주로 대상과의 진지한 대면과 사색에 의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시기에 그려낸 ‘어촌’은 단순한 어부의 모습이 아닌, 애환이 느껴지는 본질적인 모습을 담담하게 화폭에 투영하고 있다. 이 어부의 침묵하는 모습을 통해 풍랑과 싸우고, 찬바람을 맞아가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1980년 이후 20여 년 동안 직관력을 바탕으로 한 휴머니즘에 몰입한다. 청색 공간이 주를 이루는 화면 안에서, 점점 각박해져만 가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에 에너지가 좀 더 풍부하게 분출되도록, 그리고 인간미가 넘치도록 하는 등 그 이전과 확연히 다른 표현들이 나타난다.

그의 타고난 직관력은 대상의 본질을 화면 안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였다. 이는 1980년대 이후 휴머니즘적이면서도 맑음이 드러나는 청색시대에 들어오면서 더욱 그 빛을 발한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창작된 ‘공’(空) 시리즈에서는 더욱 직관에 의존하는 자유로움이 표출된다. 그는 직관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왔으며, 이 예술적 직관은 자신의 내면 혹은 자신의 단아한 삶에서 체득됐다.

고 윤애근 작가

제자였던 이구용 교수(전남대 미술학과)는 작가에 대해 “한국화로 시작, 1990년대 파격적인 실험을 시도했다. 회화적 평면의 한계를 극복하고 부조형식을 구축했다”면서 “평면에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장지를 덧대 두껍게 오려내면 단층이 생기는데 그 단층에 칼을 활용해 깊이있는 회화를 구사했다”고 평했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예약제로 관람객들을 들일 예정으로 9일 오전 10시30분 미술관에서 채종기 관장 및 전통과 형상회 이창훈 회장, 정산 백현호 화가, 이구용 전남대 교수 등이 참여해 유튜브 관련 영상을 제작할 계획이다.

윤애근 화가는 전남 담양 작업실에서 화상을 입은 뒤 서울에서 치료를 받던 중 병세가 악화돼 2010년 7월17일 타계했다.

생전 어부의 애환에 천착한데 이어 휴머니즘적 화풍과 청색시대를 구축했고,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던 ‘율’(律)시리즈, 곤충작업 등에 몰두했고, 미국·인도·남아공 등 국내외를 망라해 다양한 전시를 열었으며 한때 넥타이 등 문화상품 제작을 시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