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남도의 불교문화를 널리 알려온 이들이 있다. 남도불교문화연구회(이하 남불회)는 사찰에 남아있는 사적비와 고승 비문, 탑, 동종 등에 주목, 탁본을 떠 여기에 새겨진 문자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불교문화를 연구하는데 앞장서왔다.

남불회는 불교학 및 불교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한국의 불교문화 가운데 광주와 전남 지역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연구 및 계승에 앞장서고 있는 민간단체다. 남도의 불교문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1년여의 논의와 준비모임을 가진 뒤 지난 1989년 4월1일 창립, 두 달 뒤인 6월3월 첫 집담회를 연 바 있다. 30주년이던 지난해까지 월례 학술연구발표 206회, 국내외 불교문화 답사와 조사 166회를 진행했다.

남불회를 이끄는 윤여정 회장을 지난 6월12일 국립광주물관에서 ‘남도 불교 천년의 증언, 현장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만났다. 학술대회는 지난해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남불회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동안 금석문 177종의 탁본 210점을 국립광주박물관에 기증하면서 기증 탁본전-남도 불교 천년의 증언’(5.11~8.9 기획전시실)의 연계행사로 열렸다.

남도불교문화연구회 회원들

그는 먼저 금석문은 오랜 세월 간직돼온 불교 문화와 역사를 감상할 수 있는 매개라고 말했다.

“남도의 사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적비와 고승 비문, 탑, 동종 등에 새겨진 금석문(金石文)이 남아 있죠. 여기에는 100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지역의 불교 문화를 형성해온 왕과 관료, 지역 정치세력에서부터 덕이 높은 승려들, 일반 신도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금석문은 역사의 증언인 셈이죠.”

이어 윤 회장은 탁본을 뜨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탁본은 돌과 금속에 새겨진 금석문을 종이에 찍어내는 것을 일컫는다. 표면을 세척한 뒤 물을 뿌리고 천으로 감싸 먹을 묻힌 먹방망이로 세심하게 두드려 찍어낸다. 이렇게 뜬 탁본은 금석학의 연구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현재 연구회 회원은 문화재위원 및 전문위원, 학자, 사찰 박물관 및 성보유물 관계자, 고건축연구자, 교사, 문화유산 해설사,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군의 전문가 50명으로 구성돼 있다. 제1대 성춘경 전 전남도립 옥과미술관장에 이어 2대 이순규 신경정신과 의사가 회장을 맡았다.

탁본을 뜰 준비를 하는 모습

이 지역의 문화유적에 밝은 혜안을 가지고 있는 강현구·이계표·천득염·박춘규·최성렬·황호균·정선종·최인선·강명호·이봉수·박춘규씨 등 이 분야 전문가들이 회장을 맡아 남불회를 이끌어왔다

회원들은 (격월제로) 매월 첫째주 토요일에 답사와 연구강의를 격월제로 진행하고 있다. 35명이 활동 중인 가운데 5~10명 내외로 팀을 이뤄 지역 곳곳을 다니며 탁본을 뜬다. 회원들의 일정과 그날의 기온 및 습도 등이 다 맞아 떨어져야 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언급했다.

윤 회장은 “탁본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 상태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데 있다”며 “불교문화를 연구하는 데 꼭 필요한 귀중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탁본을 들여다보면 글씨가 쓰여진 당시의 사회 상황 및 정치, 교육, 문화 등을 알 수 있다. 이번에 뜬 탁본을 100년 뒤 누군가 똑같은 대상을 탁본한다면 비교해볼 수 있고, 바뀐 정도에 따라 연구물이 나올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또 금석문이 파손될 경우 1대1 크기의 탁본을 보면서 연구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고 했다. 예술적인 관점에서는 탁본에 드러난 글씨를 통해 서예사적인 연구가 가능하다고도 했다

그동안 21개 시군에 걸쳐 31개 사찰과 26개 유적지 등 57개소를 돌며 앞서 언급했듯 금석문 177종의 탁본 210점을 떴을 만큼 이들의 활동은 남다른 의미를 더한다. 이들 탁본을 기증했다는 이야기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남불회 기증 탁본전-남도 불교 천년의 증언’ 전시 전경.

대상이 많은 시군은 순천(51)과 해남(30), 장성(14) 등 순이었다. 사찰별로 보면 송광사(30)를 시작으로 미황사(23), 선암사(18), 백양사(12), 능가사(6), 태안사(5), 흥국사(5), 대흥사(5) 등이다. 종류별로 보면, 고승비(46), 범종(28), 승탑(부도)(24) 사적비(22), 매향비(15), 현판(6), 암각(8), 석교(4), 불상(3), 석등(3), 괘불지주(3), 불탑(2), 목판(2), 금고(1), 와당(1), 일반향토유산(10) 등이다

그는 이같은 활동이 계속돼야 한다고 힘줘 이야기했다.

“우리나라에 오래된 탁본들은 400여년 안팎의 역사를 자랑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죠. 디지털 장비로 촬영한 이미지들이 300~400년 보존될 수 있을까요. 불교문화의 연구 및 계승, 발전을 위하는 사명감이 없이는 하기 힘든 일이죠. 탁본을 통해 얻은 결과물들을 후대에 물려줄 의무를 갖고, 임하고 있습니다.”

남불회는 몇 년 동안 회원들과 탁본을 뜨면서 기존의 연구를 뒤집는 결과를 도출했고 탁본을 진행, 여러 부분에서 오류를 발견한 바 있다. 이같은 연구 결과물을 현재 12호까지 펴낸 연구집 ‘불교문화연구’를 통해 꾸준히 바로잡고 있다. 이외에 학술세미나 등도 꾸준히 열고 있다.

끝으로 윤 회장은 향후 불교문화 발전을 위해 활동을 지속할 뜻을 내비쳤다.

“우리 문화의 뿌리인 ‘불교문화’를 바로 알 수 있도록 하는 게 남도불교문화연구회의 일이죠. 앞으로도 사전답사와 탐방, 탁본, 연구집 발간, 세미나 등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걸으며 남도불교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