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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아름다운 축복으로 만든 사람들
강경호 시인·계간 '시와사람' 발행인

2020. 06.11. 18:04:37

강경호 시인·계간 시와사람 발행인

[문화산책] 며칠 전 카카오톡을 통해 광주문인협회 탁인석 회장님이 동영상을 보내왔다. 나는 그 영상을 보고 매우 반가웠다. 레나 마리아의 공연장면이었다. 20여 년 전쯤이었을까. 레나 마리아가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레나 마리아의 전기 한 권을 선물로 받았다. 그녀가 직접 사인한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단숨에 읽었다. 인간의 능력에 대해 감동하였다. 아니 그녀의 삶은 기적과 같았다.

레나 마리아는 1968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두 팔이 없고 왼쪽 다리도 짧았다. 그런데 그녀는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세계 수영대회에서 네 번이나 우승을 하였다. 뿐만 아니다. 피아노, 요리, 그리고 가스펠 가수가 되어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과 용기를 전해 주고 있다.

레나 마리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장애를 가진 것에 대해 불만불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절대자가 개개인에게 나름의 능력을 준다고 확신하였다. 선천성 장애인으로 태어나게 하였지만 절대자는 공평하여 개인에게 맞는 훌륭한 능력을 준다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하였다. 자신에게는 두 팔을 주지 않았지만 천상의 목소리를 주었다고 여기고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능력을 개발하였다.

그녀는 돈이 없는 사람, 배운 것이 없는 사람, 권력이 없는 사람,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 모두 동등한 처지에서 태어났다는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런 까닭에 그녀는 장애인 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 들어가 똑같은 방식으로 교육을 받았다. 이는 순전히 레나 마리아 자신에게 장애는 절대자가 준 아름다운 선물이라는 인식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듯 세상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지구촌을 돌아다니며 삶의 아름다움과 절대자에 대한 사랑을 노래 부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팔 없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끔찍하게 생각할 것이다. 장애인으로 태어나게 한 부모에 대해 원망하며 비통해 할 것이다. 두 팔이 멀쩡한 사람들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레나 마리아와 같은 사람은 특별한 사람일까? 자신의 몸이 다른 사람들과 다름을 알았을 때, 장애인이라고 사람들이 수군댈 때, 그녀는 절망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불리한, 불행한 여건을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이겨낸 것은 분명 인간승리이다. 레나 마리아라는 존재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몸이 성한 사람들에게도 절망을 희망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이끄는 전도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이 그녀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십 수 년 동안 장애인들과 시를 공부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처럼 시의 본질이 어떻고, 비유가 어떻고를 가르치다가 나는 그것을 접어버렸다. 이른바 장애인 문학은 작품성을 따지기 보다는 그들이 장애를 축복으로 알고, 장애도 사랑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였다. 장애인들이 보다 긍정적인 사고로 희망을 꿈꾸는 글이라면, 그래서 많은 장애인들이 좌절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장애인 문학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을 갖게 된 것은 많은 장애인들의 글을 읽으며 절망하면서 부터이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날마다 침대에 누워 천장에 붙은 파리를 세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장애인에게 작품성을 따지는 일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장애인의 이름은 장성규 씨이다. 그는 1급 시각장애인이었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여서 그는 사물의 생김새와 색깔을 어떻게 인식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모르는 그가 어찌 보면 불행하다고 여겨졌다.

그렇지만 절대자는 공평해서 그에게 클라리넷 연주를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광주에서 음대를 졸업하고 겨우 비행기 삯만 가지고 눈이 성한 사람들도 쉽지 않은 독일에 유학을 갔다. 수백 리가 되는 곳의 독일인 스승에게 기차를 타고 공부하러 다닐 때 얼마나 불편했을까. 때로는 지팡이를 더듬거리다가 여성의 치마를 들춰내는 치한으로 오해받기도 하고, 때로는 철로에 떨어지는 위험에 처하기도 한 그에게 삶이란 무슨 의미였을까? 독일 유학을 끝내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미국으로 음악 공부를 떠난 그의 인생의 목표를 무엇이었을까?

나의 제자 중에 정신적 장애를 가진 아름다운 청년이 있다. 그의 삶이 경제적으로 어떠한 지는 잘 모르지만, 그는 일반인들 보다 백배의 노력으로 시를 공부했다. 그의 삶에서 시는 절대적인 것이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듯 바르게 성장한 그 청년은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내게 안부 메시지를 보내온다. 그런 그가 기특하고 고맙다.

장애를 극복하고 인생을 승리로 이끈 사람들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의 따스한 손길이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가능하기 힘들다. 이 세상 삶의 주체는 ‘나’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에 대한 지독한 노력이 필요하다.

주변에서 장애인을 본다. 많은 장애인들이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안마라고 한다. 우리 사회는 그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들 앞에 놓인 현실을 타개하는 장치를 마련해 주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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