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그가 요리사다운 발상을 투영해 시집을 펴낸 뒤 밝힌 소감이다. 킥복싱을 망라한 한국인 최초 K-1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 전업 요리사가 첫 시집을 펴내 문단 안팎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주인공은 전남 신안 지도 출생으로 2015년 ‘시와 경계’ 여름호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김옥종 시인(52·광주). 김 시인은 엄연히 광주전남 진보문학단체인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원으로 정식 시인이다. 그의 독특한 이력만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격투기와 요리사로 기억하고 있을 터다.
그러나 그의 정신적 본업은 따로 있다. 바로 시쓰는 일이다. 이런 그가 등단 5년만에 첫 시집을 펴냈다. 첫 시집 표제에서 그가 요리사임을 직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휴먼앤북스의 휴먼시선 첫번째권으로 나온 ‘민어의 노래’가 그것이다. 시 표제로 생선이 선택된 경우는 흔치 않다. 요리하며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표제시 ‘민어의 노래’는 유달리 남도 해산물이 많이 등장하는 그의 시편의 특질을 유추할 수 있다. ‘소리내서 울지 않는 세월’이나 ‘민어가 돌아왔다고 기다림이 끝난 것 아니’라는 그의 시적 귀결에서 우리네 애잔한 삶의 면면들을 느낄 수 있다. 간단하게 살아지지 않는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는 게 삶이어서다. ‘민어의 노래’에는 서민들의 풋풋한 삶이 그려지고 있다.
‘세월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민어 몇 마리 돌아왔다고 기다림이 끝난 것은 아니다/새우 놀던 모래밭을 파헤쳐/집 지을 때부터 플랑크톤이 없던 모래밭에/새끼를 품어 내지 못한 오젓, 육젓이 밴댕이를 울리고/깡다리를 울리고/병어를 울리고/네 입맛 다실 갯지렁이도 없는 바다에 올라 칼끝에 노래하던/민어의 복숭아 빛 속살은 다시 볼 수 없으리라’고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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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등단 5년만에 첫 시집을 펴낸 김옥종 시인. |
시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육지에서 즐겨먹는 요리들 역시 시적으로 형상화해 냈다. 이를테면 늙은 호박 감자 조림, 돼지 주물럭, 늙은 호박죽, 복숭아 깎두기, 더덕무침, 선지국, 비빔국수, 깜밥, 마늘쫑 등이 꼽힌다.
시인은 “요리사는 더 넣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빼고 억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야 한다”면서 “칼에 숫돌을 비비며 기억을 꼬집는다. 근 두 달 반 동안 칼을 잡지 못했다.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즐겁게 한 세월을 보낸지 21년이 지났다”고 소회를 밝혔다.
시적 이력보다 요리사의 시간들이 그에게는 더 많았다. 요리사로 기울어진 삶을 시인의 삶으로 호출하고 있는 셈이다.
1, 2부가 요리에 관한 시들이었다면 3부에는 그의 일상과 물상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응축된 시편들이 실렸다. 이번 시집에는 총 67편의 작품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하응백씨는 표사에서 한때 주먹세계에 있었으나 한국 최초의 격투기 선수를 거친 다음 요리사가 된 시인의 시작품에 대해 “호기심 반으로 큰 기대 없이 시를 읽기 시작했지만 웬걸 그의 시는 시에 대한 기본기가 닦여 있었고 신선했다. 좋은 시라면 으레 그래야 할 상상력의 공간이 훌륭했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남도 사투리와 각종 해산물에 대한 현장의 지식과 남도식 요리 레시피가 잘 어울려 읽는 맛을 더했다”고 평했다.
김옥종 시인은 광주시 북구 신안동에서 고향 이름을 딴 지도로 식당(계절음식)을 운영하고 있다. 향후 여건이 되면 ‘시가 있는 요리서’를 펴낼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