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거리에서 볼일을 보고 그가 입주작가로 있는 한 미술관을 찾아가는 날, 하필 좌회전 신호를 받아야 하는데 지하차도로 들어가는 바람에 남구 송하동 소재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적십자혈액원 앞까지 가야 했다.

좌회전 후 적십자혈액원 앞에서 유턴해 광주대 옆 도로를 타고 도곡으로 향할 수 있었다. 취재 대상 작가와는 족히 10년이 넘게 인연을 맺고 있는 화가였기 때문이다. 한 때 그는 광주미술협회와 광산문화원 소속으로 활동했다. 일과 전시현장에서 간혹 만나면서 그와 인연을 지속해온 것이다.

하지만 그를 깊이있게 들여다볼 기회는 갖질 못한 것이 사실이다. 마침 그가 화순 도곡 소재 미술관에 입주해 작업을 하고 있다기에 그를 만나기 위해 소소미술관을 방문한 것이다. 세량지를 지나 소소미술관에 도착하니 사진작가 김성백씨의 사진전 ‘시간 자연에 잠기다’전이 열리고 있었다. 대충 훑어보고 그에게 전화를 걸자 그가 작업복 차림으로 내려와 맞았다.

그는 소소미술관 3층에서 작업을 펼치고 있던 차였다. 주인공은 회화는 물론이고 일찍부터 퍼포먼스와 영상 등에 걸쳐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왔던 전남 영암 출생 문형선(45·서양화) 작가다.

앞서 광주미술협회나 광산문화원 소속을 언급했던데는 그 역시 가장으로서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창작과 생계를 병행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어서다. 문 작가는 한가하게 창작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술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는 등 1인 다역을 하면서 일상을 운영하고 있다.

‘UTOPIAIMAGE’

여기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보니 학기철에는 조선대와 소소미술관 작업실, 그리고 자택인 봉선동을 다람쥐 쳇바퀴돌듯 하며 보낸다. 그의 작업실에는 작업 중인 작품과 막 작업이 끝난 작품이 벽에 기대져 있었고, 길다란 작업용 책상에는 다양한 색감 통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에게 요즘 근황을 물었더니 지난 겨울 예술공간 집에서의 열네번째 개인전(2019.12.15∼24)을 여는 한편, 예술의거리 활성화 사업에 매달렸다는 설명이다. 아시아문화예술활성화 거점 프로그램 ‘빛나는 거리 예술로궁동’을 12월말까지 마무리지었다고 한다.

현재는 또 다른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작업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느라 분주하게 보내고 있다. 그는 20대 때 퍼포먼스에 치우친 활동을 펼쳤다. 실험을 거듭하며 예술가로서의 진지한 자아와 정체성 및 방향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과 같은 시기였던 셈이다.

그룹 ‘퓨전’ 멤버로 활동을 펼치며 평면보다는 설치, 퍼포먼스, 미디어 등을 다양하게 섭렵했다. 그러다 그를 대표하는 명사로 ‘유토피아’가 자리잡게 된다.

2010년 열린 첫 개인전(12.23∼31 유·스퀘어 문화관 금호갤러리)에서 유토피아와 실험적 시도의 병존이 읽히는 작품을 선보였다. ‘혼자 놀다-꿈꾸는 풍경’ 시리즈와 ‘혼자놀다-트레이드마크(trademark)’ 및 ‘혼자 놀다-엘로우 맨(yellow man)’ 시리즈가 그것이다. 작가 자신이 등장하지 않고 자연이 등장하는 화면과 자신이 직접 화면 속에 등장하는 작품을 통해서다. 엘로우 맨은 어찌보면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유토피아에서 더 나아가 페르소나(persona) 키워드를 작업으로 보여주기 위한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이것이 그가 요즘 하는 고민의 주 내용들이다.

“기존의 유토피아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원형 이미지를 회화적으로 접근해보자는데 집중하고 있죠. 장식적이거나 환상적 표현보다는 자아나 외부세계와 연결기능을 갖고 있는, 갖춰져있는 페르소나 키워드를 작업으로 보여주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지난해 12월 이후 작업의 변화를 시도해왔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는 이야기예요.”

‘space-utopia’

작가는 이에 대해 우리 자신들이 현실에 살고 있지만 마치 가상공간에 사는듯한 그런 이미지의 느낌을 그림자에 투영하든, 표현에서 철학적 요소를 투영하든 작업에서 구현하겠다는 것으로 설명했다. 장식적이고 몽환적이며 판타지적인 부분들은 그대로 유지해가겠다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특히 자연의 원형 이미지들을 활용해 인간 감성을 흔들 수 있는 내면의 세계를 회화적 표현 양식으로 작업해나갈 뜻을 내비쳤다.

이는 시뮬라크르(Simulacrum·복제를 가리키는 철학 개념)적으로 일상이 가면 속에 감춰져 있다고 바라보는 작가의 작업적 시각에서 기인된 바가 크다.

“기존 그림은 판타지적으로 보였지만 지금의 그림들은 감정선을 더 건드려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장식적 표현을 선으로 구사해 동양적 세계를 구축하려다보니 훨씬 더 작업이 복잡하고 힘이 들었죠. 선뿐만 아니라 각종 색감을 통해 깊이있게 감정선을 건드려보고자 하는 작업인 것이죠.”

그의 회화는 이처럼 쉬운 접근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그의 화면 속 유토피아는 현실의 상과 가상의 상이 늘 대비된다. 그러다보니 늘 복합적 해석은 필수다. 이게 불가능하면 그의 회화 읽기는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그의 회화에서는 좀 더 단출해지는 경향이 보인다. 감상자로서는 참 다행스런 점이다. 지난해 개인전에서 보인 유토피아 이미지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지상의 나무와 수중의 일그러진 나무가 대비된다. 작품을 해독하고자 하는 감상자들은 지상의 나무 때문에 그의 작품 해독이 쉬워졌다는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이런 점이 그의 유토피아가 작품성에만 함몰되던 방식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의 유토피아의 세계가 고립되지 않고 교감의 폭을 ?혀갈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Dreaming Landscape’

이런 그도 처음에는 부모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미술을 하지 못할 뻔했다. 간신히 누나가 부모를 설득해 미술에 입문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광주로 전학오면서 도시생활에 적응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조대부고에 진학, 미술부 활동을 하면서 점차 요동치던 그의 질풍노도 역시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더욱이 그때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은사인 김병모 선생님과 그리고 이재호 선생님을 만나면서 미술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어 조선대 미술대학에 진학해 미술공부를 했으며, 대학원 재학시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테마전에 선택을 받으면서 정식으로 화단에 데뷔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온 그에게 다뤄보고 싶은 분야와 어떤 화가로 평가받고 싶은지를 물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시대에 맞게 조각은 물론이고, 영상을 하는 등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것이 꿈이에요. 다른 장르인 국악방송 진행자를 10개월 정도 한 것도 이런 꿈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자연의 원형 이미지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유토피아를 구축하고 싶어요. 유토피아에는 에피소드 같은 것을 배제하지 않고 투영할 겁니다. 더불어 집사람이 전통무용을 하는 만큼 전통문화를 회화에 반영하면서 힐링이 되는 세계를 더 농밀하게 구축해나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