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광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있었던 광주시립교향악단 가족 음악회의 부제는 ‘너의 슬픔에게’였다. 시와 음악이 함께 하는 특별한 음악회로서 광주시향의 기획단원이 쓴 리플렛 원고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정리되고 있었다.

“광주시향의 연주와 함께 슬픔에 빠져있는 분들에게는 위로의 시간이, 그리고 모든 분들에게는 공감의 감각을 확장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의 말을 덧붙입니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잠깐 뒤돌아보게 하는 것, 다만 반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 그것이 시일 것이라고 오래 생각했다’.”

나치시대 독일 SS친위대 대장이었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Heydrich)라는 사람이 있었다. 1942년 5월 체코 출신 레지스탕스에 의해 암살되기 전까지 체코 총독 시절 그의 별명은 ‘프라하의 도살자’였다. 별명대로 체코 내에서 나치에 대항하는 모든 저항 세력들은 무자비하게 학살됐다. 하이드리히의 유일한 취미는 음악 감상과 바이올린 연주였는데 조기 음악교육을 받았던 그의 바이올린 연주는 프로 연주자 이상이었다.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 역시 클래식 광팬이었다. 그는 바그너 음악에 완전히 심취해 있었으며 나치의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바그너의 음악과 베토벤 9번 교향곡의 연주를 지시하곤 하였다.

고대 이래 변함없는 사실로서 예술가들은 언제나 무력했고 권력의 선전과 치장의 도구로서 자주 이용됐던 것은 세계사의 팩트(Fact)로서 남아있다. 나치 독일 때, 선동의 천재 ‘폴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역시 클래식 애호가였다. 그는 “음악은 모든 예술 중 가장 감각적인 것”이라고 규정하고 이성보다 감정과 가슴에 더 호소한다면 나치 문화 선동정책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음악의 힘’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인용해 독일 국민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며 전쟁터로 내모는데 완벽하게 성공한다. 인류의 화합을 노래하고자 했던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Beethoven Symphony No. 9)은 나치 독일 시절 가장 많이 연주 되는 클래식 레퍼토리였으며 작곡가 베토벤의 우수성은 곧 독일 민족의 우수성으로 선전 됐다. 너무나 놀랍게도 이 곡은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오케스트라가 가장 많이 연주했던 곡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2차 대전의 막바지는 그야말로 야만의 시대였다.

우리나라의 이야기다. 혈기 왕성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하지만 철모르는 조선의 어린 학생들을 서울 시내의 공회당에 모아놓고 비장한 클래식 음악들을 들려주고 자극적인 연설과 시(詩)낭독으로 선동하며 자살특공대(가미카제 도꼬다이·神風特攻隊)로의 지원을 독려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사지(死地)로 내모는데 앞장섰던 자들이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훗날 서울대 음대 학장, 이화여대 총장을 비롯해 국내 음악계 및 문학계, 학계 등의 요직을 차지한다.

아마 광주시향의 가족 음악회를 기획하고 있던 단계였을 것이다. 책상머리로 다가온 기획단원 한명이 갑작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과연 음악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당황스러웠다. 글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땐 딱히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뭔가 답을 해야 할 것 같다. 솔직히 클래식음악이 이 세상을 온전히 선하게만 변화 시킬 만큼의 힘이 있다거나 언제나 완벽하게 선한 도구로서만 사용되는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작정하고 진지하게 돌이켜 보니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는데 필자가 가장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웠을 때 음악으로부터 큰 위로를 받았었던 것 같다.

그러니 독자들도 지금 이 세상에서 힘들고 지칠 때는 클래식음악을 통해 공감의 감각을 확장하시기 바란다. 상처받은 영혼이 세상에서 믿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하게 진실한 대상을 얻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힘들고 슬픈 사람들은 ‘재클린의 눈물’(Les larmes de Jacqueline)을 들어 보시기 바란다. 당신의 슬픔보다 더 슬픈 음악을 듣게 될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고통, 절망과 역경을 끝내 이겨내고 승리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스스로에게 북 돋우고 싶다면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과 교향곡5번’을 듣기 바란다. 또한 당신만의 비밀스런 공간에서 방해받지 않고 쉬고 싶다면 ‘치마로사의 오보에 협주곡(Cimarosa/ Concerto for oboe & orchestra in C minor)’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6월8일 광주시향 가족 음악회에서 읽혀졌던 시들도 다시금 독자들에게 음미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한다. 필자의 귓전에는 아직도 신철규 시인의 ‘슬픔의 자전’이란 시를 낭송하던 아나운서의 떨리던 목소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잠깐 뒤돌아보게 하는 것이 시일 것이라고 오래 생각했다”는 시인의 독백처럼 클래식음악도 그 정도의 일은 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