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영감을 줍니다. 사실 한국 방문은 제 꿈을 실현하는 일이에요. 광주라는 곳이 동양을 상징하는데 이곳을 통해 동양을 깨친다고 봐야죠. 프랑스 사람들이 다른 문화를 재발견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저도 문화가 다른 광주에 와서 영감을 받으면서 꿈을 실현해 가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개막해 오는 31일까지 한국미용박물관 1층 특별실에서 작품 13점을 출품한 가운데 ‘꼬레라숑’(COREElation)의 한국·프랑스 판화교류 네번째 전시의 연계행사로 마련돼 ‘시간의 흔적’이라는 타이틀로 진행 중인 특별초대전 전시현장에서 16일 오전 만난 뤽 티부흐(Luc Thiburs)는 이처럼 소감을 밝혔다.

한지로 작업을 펼친다는 점 때문에 주목을 받은 뤽 티부흐는 광주에 도착해 예술의거리에서 한지를 구했을 만큼 한지에 대한 신뢰가 높은 작가다. 더욱이 딸인 따이스 역시 투우(Tours)대학 대학원에서 한국학 전공자로 한국과 프랑스 작가간 교류에 온힘을 쏟고 있다.

이런 뤽 티부흐에게 한지 작업의 장점을 묻자 강도가 셀 뿐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회화적 분위기를 창출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온다.

“서양 판화에 사용하는 종이와 한지를 비교해볼 때 한지는 뒷면에서도 투명하게 비치죠. 판화용 종이는 뒷면이 결코 비춰지지 않아요. 제 작업은 판화를 10회 정도 밀어 회화적으로 풀어내는데 강도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런데 한지는 그런 강도를 가지고 있어요. 강도 뿐만 아니라 미묘한 분위기 창출까지 가능하다는 이야기죠.”

그는 프랑스에 독일인 중국 종이 판매상이 있어 동양 한지를 발견하기 어렵지 않지만 작업의 조건에 충족되지 않아 반드시 한지를 구해 쓴다는 설명이다. 한지는 저항성이 강해 찢어질 염려가 없는데다 갤러리에서처럼 액자에 넣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한지를 사용하는 점 외에 그가 눈길을 끄는 점은 여럿 있다. 판화 테두리를 있는 그대로 살려낼 뿐만 아니라 판화 뒷면에서 빛을 비추면 숨겨있는 다른 형상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한국미용박물관 관계자의 ‘이미지 이중 중첩 기법’이라는 설명이 더해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별도로 변화와 실험의 과정이어서 굳이 기법에 대한 명칭을 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얽매이지 않을 생각입니다. 제 작업이 실험의 연속으로 그 과정이기 때문이죠. 작품명제가 따로 없이 코드 번호만 매겨진 이유죠. 다른 작가들은 판화 작품에 테두리를 두지만 저는 작품에 테두리를 두지 않아요. 하나의 정형화된 이미지로 비춰질 수 있어서죠.”

다만 그는 자신의 작품이 실내에서 인위적으로 내걸리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창가에 내걸리기를 희망했다. 전등으로 비춰서 형상이 구현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햇빛에 의해 형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작품의 원래 콘셉트라는 점을 잊지 않았다. 처음 빛에 의한 형상 구현은 프랑스 노르망디의 날씨와 무관하지 않다고 밝힌다. 햇빛보다 구름이 많은 지역으로 구름이 물러가면 빛이 나오고, 구름이 밀려오면 빛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기법을 착안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작품을 액자에 넣는 것도 꺼려한다.

“제 작품이 액자 속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유리에 제 작품을 넣으면 무슨 수족관 같은 느낌이 들어요. 강도가 있어 작품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액자에 넣지 않아도 되죠. 그래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걸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좋아해요.”

뤽 티부흐는 16일 오전 한국미용박물관 전시실에서 (사)대한미용사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설명했다.

이어 ‘꼬레라숑’에 대한 전망을 묻자 어려움이 있지만 현지 작가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반응이다. 루앙 역시 광주처럼 문화예술도시를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루앙이 노르망디의 중심도시이자 예술도시인데 유럽 대표 예술도시로 나가고 싶어한다고 들려준다. ‘꼬레라숑’이 현지에 널리 알려져 있는데다 더 많은 작가들이 가입을 희망한다는 전언이다.

또 그는 5·18광주민중항쟁에 대해서는 이미 2008년 루앙시에서 영화 ‘꽃잎’이 상영돼 알고 있다면서 아직 5·18묘지를 가보지 못해 딸과 함께 방문할 예정이라고 내비쳤다.

특이한 점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의 답변을 듣기 전까지는 작가가 무슨 계획도 없지라고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답변을 듣고 나면 그가 왜 그런 답을 내놓았는지 이해가 간다.

“환경을 위해 동판화보다는 아크릴을 쓰는데 제 작업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데다 사이즈가 크다보니 작품 하나 찍는데 1년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전을 5년에 한차례 하면 충분한 것 같아요. 한 작품을 하는 데 오래 걸리다 보니 개인전보다는 제 작업에 집중하고 싶죠.”

지난 9일 광주에 온 뤽 티부흐는 2008년과 2012년에 이어 세번째 광주를 찾았다. 뤽 티부흐는 지난 2016년 ‘꼬레라숑’ 세번째 전시행사로 마련된 강행복 개인전 주최자 겸 큐레이터를 맡아 활동했다. 프레쥐스 문화센터와 페세지·광주 우제길미술관 등의 개인전 및 스웨던 스톡홀름 미니비엔날레와 베이징 슈우안 국제판화비엔날레, 캐나다 제10회 트루아 리비에르 국제판화비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그는 17일 출국예정인 다른 동료들과 달리 오는 24일까지 자신의 딸과 함께 더 체류하면서 제주도와 경주 등을 둘러보며 작업 영감을 얻기 위한 여정을 지속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