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의 청해진제국 덕분에 신라의 지배층이 그 혜택을 최대로 누렸다.

금입택과 포석정, 100만이 사는 번화한 도시로 대변되는 신라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것이다. 문성왕은 장보고를 제거하고 염장과 정년에게 청해진제국의 경영을 맡겨도 유통을 통해 이익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장보고의 카리스마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고, 청해진제국을 움직이는 패러다임을 신라는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다. 청해진제국은 힘과 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해방과 인류 보편적 가치의 추구라는 이상향이 결부돼 만들어진 사회로서 신분제라는 틀안에서 움직이는 신라와는 그 근본부터 달랐다.

완도에 세워진 장보고 동상.

역동성에서 그리고 가치에서 차이가 났다. 장보고의 청해진제국만큼 부를 창출하거나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인물도 없었다.

신라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해상유통망을 잃어버리고 고스란히 그것을 일본에 넘겨줬다.

유통망을 상실한 일본은 ‘흥리상왜’라고 하는 왜구들이 장보고 세력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한·중·일 삼각무역을 휘어잡고 멀리 대양으로 진출하려던 장보고의 좌절로 인해 신라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한반도의 역사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이라는 삼국의 역사서에 동시에 실린 인물로는 장보고가 유일하다.

하지만 2015년에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발행한 공식 책자에도 김부식의 정략적인 평가에 기반해 장보고를 폄하하고 있다.

현재까지 장보고에 대해 견지해온 신라의 눈이다. 금입택과 포석정, 100만의 도시만을 강조할 뿐 그것을 가져온 장보고의 청해진제국은 반란군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장보고의 힘과 세력은 신라에만 머물지 않았다. 일본과 중국 나아가 동남아시아와 아랍권과도 통하고 있음을 현재 남아있는 사료와 증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보고를 기리는 중국 산동성의 적산법화원.

특히나 일본에서 장보고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일본은 사당을 만들고 해신으로 추앙했다. 일본 천태종 개조인 사이초가 불법을 배우러 당나라에 가기 전 ‘신라국신’에게 뱃길의 안전을 기원하고, 당에서 돌아온 뒤에는 신라국신에게 감사하기 위해 ‘신궁원’을 만들었다는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3대 교조인 엔닌 또한 당나라를 다녀온 후 신라명신의 가호로 안전하게 귀국했다며 신라명신을 절의 수호신으로 삼고 신라명신을 위해 적산선원을 세웠다.

일본 연역사의 승려였던 엔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는 장보고가 활약했던 시대를 묘사하고 있으며 이 책을 영문으로 번역하고 연구한 초대 주일미국대사였던 라이샤워 교수는 1955년 하버드대 발표논문에서 장보고를 ‘무역왕’으로 칭하면서 ‘해양상업제국’으로 청해진을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진영논리에 빠져 삼국사기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경주에서는 오직 무덤가 안내판에만 반란군으로 나올 뿐이었다.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인류가 본받아야 하고 지켜내야 할 유산을 지정, 기념물로 관리하고 있다. 최고의 기준은 ‘보편적 가치’이다. 인류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위하여 각 문화권의 기념물을 보존해 알리자는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길’은 2개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의 순례자의 길과 일본의 구마노고도이다. 이 구마노고도가 바로 장보고 시대에 당나라에 유학했던 구카이라는 스님의 수행길로서 인류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았다.

바로 ‘장보고의 제국의 길’과도 상통하는 의미를 가진 길이다.

장보고를 기리는 중국 산동성의 적산법화원.

지금이라도 ‘장보고 제국의 길’을 올바로 세우는 길만이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외국의 이론과 외국만을 말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숨겨진 보물 장보고를 이해하고 평가하고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 구현하는 길이 보편적 가치에 부응하는 길이다.

장보고는 단순한 신라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실천하려 한 실천가였다. 링컨보다도 천년 이상 앞서 노예해방과 신분제 철폐를 통한 이상사회의 건설을 추구했던 이상가 이기도 하다.

청해진에서 출발해 한·중·일 3국을 아우르며 인도양까지 진출, 페르시아와 아랍권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세계적인 선각자였다. 패러다임이 다른 범상한 인물이었다.

장보고를 신라명신으로 모시는 엔닌이 세운 적산선원에서 명신제를 지내고 있다.

바다를 이용한 유통을 통해 장보고가 이룬 위대한 제국의 부가 신라로 쏟아져 들어왔다.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이나 영국의 대영제국 또는 로마제국에 대해서는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없던 한반도의 남쪽 끝에서 ‘무’에서 세계사의 유례가 없는 엄청난 ‘유’를 창조한 글로벌경영의 원형을 보여준 장보고에 대해서는 그저 정략적인 폄하로 일관하고 있지 않는지 반성해야 한다.

장보고가 세계적인 유통망을 형성한 바탕에는 강진과 해남, 부안에서 만들어지는 도자기와 전라도 연안에서 재배해 가공한 고급차, 그리고 황칠과 가시나무가 만들어준 풍부한 인적 물적자원 덕분이었다. 청해진제국이 혁파되고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노비로 전락해 벽골제에서 강제노동에 동원됐으니 누가 유통에 필요한 상품과 재화를 생산할 것인가. 유통은 단절될 수밖에 없었다. 신라가 고사되기 시작한 것이다.

장보고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표현된 민애왕 안내판. 금입택과 포석정, 100만도시, 헌강왕기록 등은 장보고를 말하고 있지만 지금도 경주는 부정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신라는 망했다.

대양으로 진출해야 할 청해진제국의 힘이 신라 경주에 갇혀버리고, 당나라로부터 문성왕이 책봉을 받게 되자 마침내 851년 청해진을 혁파한다.

장보고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신무왕의 약속이 이행되고 사회지배체제가 변화했더라면 지금 역사는 엄청 달라졌을 것이다. 장보고 해상무역 덕분에 호화사치를 누렸던 사람들이 장보고가 죽고, 세력권이 약화되자 돈줄이 막히고, 수급이 불안해 먹고살기가 궁핍해지자 불평불만이 피어오른다. 특히나 장보고 청해진제국의 사람들은 그 불평불만이 더했다.

이에 견훤이 일어나자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호응해 한 달 동안에 무리는 5000명이나 됐다. 드디어 892년 무진주(지금의 광주)를 습격, 스스로 왕이 됐다.

그래서 백제의 유민의식을 이용하고 청해진제국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상향을 추구하고자 후백제를 건설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장보고를 이용하지도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부정하고 살해한 결과가 후백제에 의한 신라의 패망으로 연결된 것이다.

다음은 신라가 그렇게 부정하고자 노력한 청해진제국을 말살하기 위하여 청해진을 공도로 만들고 청해진 제국민들을 강제노동으로 몰아간 김제 ‘벽골제’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완도에 세워진 장보고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