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뜰의 축제’로 국제적 작가 반열에 올랐던 한 극작가를 경외(敬畏)하고 싶다. 그는 당국의 제재로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지 못했을뿐더러 더 나은 조국의 운명을 위해 반체제 선봉에 섰다. 그로 인해 투옥됐음은 물론이다. 그는 1977년 ‘77헌장’을 기초한 장본인이자 피를 보지 않고 시민혁명을 이룩한 것을 의미하는 ‘벨벳혁명’을 주도해 체코슬로바키아의 혁명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식인들이 서명한 공동 선언문인 ‘77헌장’은 우리의 국가보안법이 가지고 있는 독소조항 폐지에 대한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지식과 사상 및 종교의 자유를 비롯해 도청 및 가택 수사 폐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극작가 출신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지막 대통령(1989∼1992)이 됐고, 체코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1993∼2003)이 된 바츨라프 하벨(1936~2011)의 이야기다. 지금의 정치는 체코와 체코슬로바키아의 분수령에서 나라의 운전대를 잡았던 바츨라프 하벨을 떠올리게 만든다.

6·13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바츨라프 하벨을 꺼낸 것은 그가 작가 출신으로 나름 정치를 꽤 다이나믹하게 수행했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물론 하벨도 일부 사안별로 비판을 피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특히 6·13지방선거는 남북 정상이 만난데 이어 북미 정상의 만남이 선거 전날이다. 지구촌 모든 사람들의 눈이 싱가포르에 쏠릴 것은 자명하다. 이번 선거는 말하지 않아도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 통일로 나아가는 분수령이 된다는 것쯤은 인식하고 있을 터다. 나름 대내외 환경이 다이나믹하게 돌아가고 있다.

코앞으로 다가온 6·13 지방선거가 중요한 이유다. 공약이 없는 선거전이라고들 말한다. 기표소에 들어가 여덟차례 기표해야 한다고 하니 유권자들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겠다. 콕 하고 찍을 만한 후보라도 많으면 좋으련만 후보에 앞서 누가, 누구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필자는 정치를 일반의 시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문화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이를테면 대통령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어떤 책을 읽고 있고, 어떤 영화를 봤으며, 가끔 전시장 혹은 음악당에 가느냐 하는 것들 말이다. 풀뿌리 일꾼들이 오페라 한 작품이라도 관람가능한 문화적 식견이 있는지가 우선한다.

때로는 정치가 문화의 영역까지 마수(魔手)를 뻗치는 일이 귀에 꽂힐 때마다 유쾌하지는 않았다. 정치가 정치라고 하는, 단 하나의 비평으로 끝난다면 그 정치야말로 빈곤,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그동안 정치가 먼저 술수의 옷을 껴입거나, 혹은 반칙을 일삼은 것을 너무도 많이 봐 왔다. 그래서 정치 똑바로 하라고 많이 외치지 않았는가.

그러나 정치를 방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6·13지방선거에 반드시 참여해 유권자로서 한표를 행사할 생각이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안내문·선거공보’를 나름 열심으로 읽어본다. 아무리 노안이라고 하지만 썩 내키는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는 공약이라도 있었더라면 ‘노안의 보람’이 있었을텐데 아쉽다.

필자가 사는 지역에는 정치로 떠난 작가는 보이지 않는다. 마음 속으로 퍽 다행스런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아마도 정치에 때가 타서 작가로서의 삶을 망각할까 걱정이 들어서다. 정치는 중독적이라고 한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고 했다. 다시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을 언급한다. 2003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2007년 희곡 ‘떠남’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4년 후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지만 이상하게 ‘떠남’이 작품제목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이번 선거에 도전하는 것이 처음이든, 아니든 간에 현시대 정치인 모두 언젠가는 떠남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왕 정치에 발 들여놓은 만큼 훗날 자신이 어떻게 떠남의 발길을 내딛을 것인지 지금부터 사유하며 정치를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