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대 지독히도 책을 읽지 않는다고 지적들 하지만 서점가 풍경을 보면 딱히 이 명제가 성립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여름 휴가철과 학생들의 방학을 앞두고 요즘 도서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나 패턴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7일과 9일 광주 대형 서점 두곳을 잇따라 찾았다. 생각했던 것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독자들이 책을 읽거나 선택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오히려 바깥 외출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이점이 있기도 하다. 더욱이 휴가철을 앞두고 독자들이 어떤 도서를 선호할까에 대해 미리 예측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만 도서 트렌드가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적어도 전통적 강세를 보였던 작가들이나 메이저 출판사들이 인기도서 목록을 가득 채우던 패턴이 깨지고, 신생 출판사들의 도서가 대거 진입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양상을 조망할 수 있었다.

광주영풍문고에 들어서자 주부와 군인, 남매 등 다양한 형태의 독자들이 책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요즘 도서 트렌드를 가늠해보기 위해 인기도서들을 살펴봤다. 곰돌이 푸류나 일본작가의 강세가 여전했다. 각 분야별 5위권 안에 일본 작가가 비교적 고르게 포진돼 있어 출판업계의 효자작가로 자리잡고 있었다.

먼저 종합순위를 봤더니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의 자서전 ‘3층 서기실의 암호’가 독보적 1위에 랭크돼 있었다. 곰돌이 푸 원작으로 알에이치코리아에서 발행된 ‘곰돌이 푸’류의 도서가 2, 3위에 포진하고 있었다. 2위에는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3위에는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가 각각 자리하고 있는 것. 이들 도서는 젊은 독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하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4위에는 위즈덤하우스에서 나온 하태완 에세이 ‘모든 순간이 너였다’, 5위에는 마음의숲에서 선보인 김수현 글·그림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가 차지했다.

소설에서는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이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2∼5위까지는 일본 작가의 소설이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2위에는 현대문학에서 출간된 히가사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3위에는 검은숲에서 출간된 고바야시 야스미의 ‘앨리스 죽이기’가, 4위에는 소미미디어에서 나온 히가사노 게이고의 ‘연애의 향방’이, 5위에는 디앤씨미디어에서 나온 사노 테츠야의 ‘너는 달밤에 빛나고’가 각각 포진돼 있다. 결국 조남주의 장편이 국내소설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셈이었다.

이처럼 소설에서는 일본 작가들의 선전이 눈에 띄었고, 특히 히가사노 게이고가 강세를 보였다.

인문분야에서는 윤홍균의 ‘자존감 수업’,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 ‘언어의 온도’로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바 있는 이기주의 ‘말의 품격’, 와타나베 준이치의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판사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이 1∼5위에 이름을 올렸다.

광주 서구 광천동 유스퀘어문화관 내 영풍문고에서 시민들이 앉아서 책을 읽거나 책을 고르고 있다.

이외에 경제·경영분야에서는 태영호의 자서전 ‘3층 서기실의 암호’, 팀 페리스의 자기계발서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김윤나의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말그릇’, 마크 맨슨의 ‘신경끄기의 기술’, 나이토 요시히토의 ‘말투 하나 바꿨을 뿐인데’ 등 순이었다.

다만 종합이든, 소설이든 국내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뽑히는 프랑스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고양이1·2’(열린책들 刊)는 서울에서 돌풍이 일고 있지만 영풍문고에서는 아직 5위권 안 목록에 진입되지는 않았다. 국내 독자들에게 팬덤이 형성돼 있을 정도로 출판시장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 등의 책들도 5위권 안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이어 광주 상무지구 소재 교보문고에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고양이1’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반딧불이’가 소설분야 1위와 4위에 랭크돼 있어 영풍문고와는 다른 흐름을 포착할 수 있었다. 영풍문고에서 소설 1위를 달렸던 ‘82년생 김지영’은 2위에 이름을 올렸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3위에 올라 있다. 5위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장편 ‘베어타운’(다산책방 刊)이었다.

시·에세이에서는 나태주 시인의 시집 두권이 5위권 안에 진입해 있다. 지혜에서 나온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가 1위를, 그리고 나 시인이 엮은 ‘당신 생각 하느라 꽃을 피웠을 뿐이에요’가 3위를 각각 차지했다. 2위에는 이병률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 4위에는 신현림 시인이 엮은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5위에는 김용택 시인이 묶은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가 5위권 안에 진입했다.

이밖에 예술·취미·여행 분야에서는 ‘애뽈의 숲소녀 컬러링북’, 진중권의 ‘서양미술사-인상주의편’, 페이러냐오의 ‘누구나 그릴 수 있는 색연필 일러스트 10,000개’, ‘피카츄 너로 정했다’, 이민기·강윤미의 ‘버려지는 디자인 통과되는 디자인’ 등 순이었다.

선거 관련 도서의 베스트셀러 진입 등 바짝 다가온 6·13과 관련된 특이한 도서흐름은 포착되지 않았다.

자신의 오빠와 함께 영풍문고를 찾은 김보람씨(25·광주시 남구 백운동)는 시와 소설 등 문학장르를 선호한다고 전제한 뒤 “책을 읽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지 않는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책을 많이 찾는데 책을 읽음으로써 얻는 위로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며 “내용이 짧기는 하지만 박솔뫼의 단편 ‘사랑하는 개’를 올 여름 읽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