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가 만든 프로그램이 ‘전파’를 탄다. 카메라 구도나 편집·음향 등 기술적인 부분은 다소 미숙하지만 주제 만큼은 너무나 다양하다. 청년들은 ‘지역에서 청춘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논하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은 ‘백세시대의 취미 생활’을 전한다. 다문화 이주여성들도 그들의 하루를 담아 소개하고, 예향의 한 시민은 ‘예술의 거리 활성화 방안’과 관련한 의제를 던지기도 한다.

방에 앉아서 ‘리모컨’을 쥐고 있던 시청자들이 방송 제작 일선에서 ‘카메라’를 잡았다. 프로그램 기획부터 촬영·편집까지, 딴 세상 얘기인 줄로만 알았던 미디어 제작 전반을 경험하는 셈이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은 ‘시청자’와 ‘미디어’를 가깝게 또 친하게 만드는 곳이다. 대내외적인 비전으로 소개하자면, ‘미디어 교육과 참여를 통한 국민 행복 증진 기관’이다. 시청자들이 미디어 전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 시청자의 ‘권익’을 증대하는 일이 재단의 비전이자 미션이다.

재단은 최근 광주를 비롯해 서울·울산·인천 등 7개 지역 센터를 돌며 순회 간담회를 열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소통을 위해서는 각 지역 사회와의 긴밀한 교류가 전제돼야 함을 알고 있어서다.

지난 23일 광주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지역사회 초청 간담회’ 참석 차 광주에 발걸음 한 신태섭 시청자미디어센터 이사장을 만났다. 막 간담회를 마치고 온 신 이사장은 “질의응답 시간이 길어져 조금 늦었다”고 양해를 구한다. 그러면서 “그만큼 미디어와 관련한 관심이 뜨거운 것”이라며 만족한 듯 웃는다.

그에게 재단의 역할을 물으며 운을 뗐다. 가볍게 질문한 것인데, 신 이사장은 대뜸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이 깊다면서 진중하다.

“국민 누구에게나 알 권리가 있고, 표현의 자유가 있습니다. 재단은 미디어를 접할 수 있는 환경, 미디어를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단체입니다. 곧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기관인 것이죠.”

미디어 분야에서 국민의 기본권은 곧 시청자 혹은 이용자 ‘주권’과 관련이 깊다. 신 이사장은 시청자들의 주권을 강화하는 일을, 방송·통신 미디어 생태계의 핵심 과제로 꼽는다.

시청자미디어재단 비전선포식

그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미디어를 이해하는 것이다. 현 시대에서 방송·통신 미디어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숱한 메시지(정보)들 중 ‘팩트’는 무엇인지 비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일 등이 포함된다.

미디어 생태계를 이해했다면, 다음 단계는 미디어를 제대로 활용하는 일이다. 신 이사장은 단순 ‘앎’에서 그치지 않고 ‘소통’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미디어를 매개로 타인과 또 세상과 교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 미디어의 영향력은 측정이 불가할 만큼 커졌어요.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자기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약한 움직임 인 것 같지만 이 같은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여론’이 되고 사회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죠.”

시민들이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게 하는 일, 이를 물심양면 돕는 것이 재단의 몫이다. 재단 하 지역 센터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들이다. 방송 촬영 장비들에 대해 교육하고, 촬영 기법을 가르친다. 또 편집·색 보정·음악 삽입·특수효과 사용 등 후반 작업 교육도 이뤄진다. 미디어를 소비하는 데 그쳤던 시민들이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보는 것이다.

센터에서 주력으로 하는 일들이지만 신 이사장은 ‘내실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는다.

“교육을 몇 명 시켰느냐, 몇 시간 했느냐 이런 수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실제 교육생들이 미디어에 어떻게 ‘관여’하고, 얼마나 ‘참여’했는지가 관건이죠. 이를 끌어올리는 키는 바로 ‘실생활 맞춤형’ 교육에 있다고 믿어요.”

재단은 최근 지자체는 물론 교육청·농촌진흥청 등과의 협력 사업 확대에 골목하고 있다. 거버넌스야 말로, 수요에 맞는 맞춤형 교육의 첫 발이라는 게 신 이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한 예로 귀농·귀촌인들의 미디어 교육 요구가 거세다고 전해준다. 새로운 지역 공동체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데 미디어 기술이 용의하다는 것이다. 여기다 콘텐츠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멘티-멘토 매칭, 코디네이터 확대 등도 소홀해선 안 될 과제로 꼽힌다.

‘열린혁신 지역사회 초청 간담회’ 개최 후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신 이사장(앞쪽 가운데)과 센터 직원들.

이와 함께 신 이사장은 시민들이 만든 콘텐츠 유통에도 공을 들일 작정이다. 재단은 ‘종합미디어교육종합정보 시스템’이란 곳에 관련 콘텐츠들을 탑재 하고 있는데 이를 확대 구축, 온라인 유통센터로 활용할 복안이다. 그는 이 페이지를 ‘청정미디어 존’이라 호명했다.

“공동체 미디어 콘텐츠들 즉, 시민들이 만든 이야기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이 같은 아카이브가 중요한 이유는, 보존·데이터베이스화에 의의도 있지만 사실 창작 활성화를 위함이기도 하죠. 창작부터 유통까지 원스톱으로 지원되는 시스템을 마련, 독립미디어 포탈로서 기능하게 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신 이사장은 장애인들의 미디어 접근성에 대한 고민이 깊다. 그간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수신기 보급 사업, 장애인 방송 서비스 도입 등은 부분적으로나마 시행 돼 왔던 반면, 발달 장애인들의 경우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게 현실이다.

그는 미디어를 보고·듣고 활용하는 데 있어서 사각지대가 생겨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신 이사장은 미디어를 통해 장애인들의 재활을 돕고, 사회 참여를 이끌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이를 장애인에 대한 ‘미디어 국가 책임제’라 소개했다.

“앞서 언급한 재단의 여러 사업들이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와 관련 깊은 일이라면, 장애인들과 관련한 과제들은 ‘인권’의 문제이죠. 미디어를 자유롭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기본권이거든요. 특히 발달장애인들을 위해서는 치유·교육 콘텐츠를 확보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재단은 이와 같은 콘텐츠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을 공모·지원하고, 일정 부분 콘텐츠가 확보되면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에요. 현재 부분적으로 시범사업이 시작됐는데 모범사례가 도출된다면 각 센터로 확산해 운영할 생각입니다.”

‘열린혁신 지역사회 초청 간담회’ 개최 후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신 이사장(앞쪽 가운데)과 센터 직원들.

앞으로 시청자미디어재단의 보폭은 더 넓어진다. 현재 광주·부산·강원·대전·인천·서울·울산 등 7개 센터가 운영 중인데, 2021년까지 10개 센터 확충을 계획 중에 있다. 전국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별로 1개 센터를 두는 게 목표다.

신 이사장은 재단의 양적 확대에 앞서, 시민들이 “센터는 우리의 것”이라는 주인의식이 강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2005년 부산센터를 시작으로 재단이 첫발을 떼었을 때, 정부 산하기관이 아니라 시민에 의해 설립·운영되는 민간독립기구였어요. 그 시절, 시민활동가들이 활발히 활동했죠. 그러다 보수 정권을 거치면서 시민들의 권한은 최소한으로 쪼그라들었어요. 이제 다시 본 주인에게 재단을 돌려줘야 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죠.”

그러면서 그는 재단-센터-시민이 함께하는 민주적 협치 모델을 제안한다. 정부 산하 기관이라는 것은 하나의 형식일 뿐, 시민 품 안으로 센터가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재단과 센터는 문을 활짝 열고 시민들을 맞을 생각입니다. 시민들의 깊은 관심과 애정이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를,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좋은 길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임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