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 입고 권총을 차고 다니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고 했다. ‘얼른 군에 입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지원서를 썼다. 하지만 그것이 평생 지울 수 없는 상흔을 간직하는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이었다.

당시 그는 육군 상사였다. 수많은 전쟁터에서 전우들의 죽음을 목도했고, 살기 위해 총을 쏘아댔다. 삶과 죽음 사이를 넘나들며 무공을 세운 대가로 충무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에 눈 돌릴 틈은 없었다. 오직 ‘오늘을 사는 것’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전투에선가 전 부대원이 거의 몰살당한 적이 있었다. 당장 확인 가능한 생존자는 자신과 상급자를 포함한 단 두 명. 더욱이 상급자는 다리에 총상까지 입은 상태였다. 그는 어둠을 틈타 상급자와 함께 아군 주둔지를 향해 조금씩 이동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 낡은 철도를 건널 때쯤 먼발치에서 노리쇠를 당기는 소리와 함께 짧고 단호한 목소리가 뒷덜미를 잡아챘다. “거기 뉘기야?” 그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어둠이 짙게 깔린 탓에 서로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찰나의 순간, 수많은 생각이 머리 속을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자신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어, 동무야 동무!”

“그는 내가 아군이라고 여겼을까, 아니면 적인 줄 알고도 묵인해주었던 것일까?”

아버지는 방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이다 적당히 취기가 오를 때쯤이면 혼잣말처럼 내뱉곤 했었다. 어린 나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왜 술에 취하면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진겨~억. 피해…위험해…. 야 임마, 정신 차려.” 어느 순간 아버지는 전쟁터에 있었다. 살기 위해 총을 쏘는가 하면 옆에서 피흘리며 쓰러진 동료를 붙잡고 오열하기도 했다.

언젠가 아버지를 따라 목욕탕에 간 적이 있었다. 한참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데 아버지가 부르더니 정성스럽게 등을 밀어주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당신의 등을 내미는 것이었다. “이제 네가 좀 밀어봐라.” 어설픈 자세로 때밀이 수건을 받아드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버지의 등 한 켠에 자리잡은 주먹만한 흉터였다. 거뭇하면서도 불그스름한 흔적을 보자 이유 없이 눈물부터 흘렀다. 아버지는 등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몰랐을 것이지만 왜 그렇게 쉼 없이 눈물이 났는지. 그 상흔이 전쟁 때 포탄 파편을 맞아 생긴 것이라는 것을 안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그 후로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홀로 전쟁을 치를 때면 등에 난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아버지는 과거에 전쟁을 치렀던 곳을 한 번 찾아가 보고 싶다고 했다. 지리산이나 강원도 철원, 북한에도 가서 전우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모습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아버지였다. 남북정상이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을 때는 코끝이 찡해지기까지 했다.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까지 성공적으로 개최된다면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남북이산가족들이 오랫동안 단절됐던 혈연의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고 제한적으로나마 일반인들이 왕래할 수 있는 ‘평화의 물꼬’가 터질지도 모르겠다.

지난 1983년 텔레비전을 통해 ‘이산가족 찾기 특별생방송’을 보던 아버지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이산가족들의 만남은 국민 모두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충분했지만 같은 민족끼리 총을 맞대야만 했던 아버지의 눈물은 분명 무엇인가 다른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반도에 전쟁 없는 시대가 온다면 아버지의 감회는 어떨는지. 오는 6월 6일 현충일, 국립대전현충원에 가서 한 번 여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