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매년 개최되는 교향악 축제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다. 적지 않은 세월동안 진행되어 온 전국 최대 규모의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이 되다보니 이제는 지방 교향악단이라 하더라도 서울 무대라는 이유로 기가 죽어 제대로 기량을 펼치지 못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오히려 1년에 한번 씩 전국 유명 교향악단들과 한번 경연을 해보자는 자세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만큼 국내 지방 교향악단의 수준이 해마다 향상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취업에 대해서는 이미 공급이 수요를 훨씬 초과하기 시작한 결과로서 지난 수개월 전에 있었던 광주시향의 신규단원 오디션에도 엄청난 수의 지원자가 몰린 것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앞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무수히 배출 되고 있는 우수한 인재들이 전국 각지의 오케스트라로 활동 영역을 넓혀 갈 것이다. 이는 국내 오케스트라의 전체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지난 4월14일 예술의 전당의 2018 교향악축제에서 광주시향은 매우 성공적인 공연으로 수도권 클래식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데 성공 한 듯싶다. 당초 예상보다 상당히 많은 관객들이 입장했고 국내 클래식 마니아들끼리 소통하는 SNS에서는 KBS FM 생중계가 끝난 직후 감상 후기가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음과 같은 글들이었다. “역시 김홍재, 믿고 듣는다”, “프로코피에프 ‘로미오와 줄리엣’ 어려운 곡이지만 김홍재의 바톤 테크닉이니까 문제없음”. “광주시향 공연장 전국 최악 공연장 넘사벽 1위” , “광주시향 그 구린 홀을 벗어나면 어떨지가 너무 궁금함. 어디까지가 실력이고 어디까지가 홀 탓일지.”, “광주시향 이제 지방 수준은 벗어난 듯.”

광주시향은 올해로 창단 41주년이다. 이제는 지역 여건이 어떻든지 서서히 오케스트라의 실질적 발전 방향을 모색해 나가야 할 때다.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광주시향은 분명히 국내에서 보기 드문 매우 특징적인 칼라를 가지고 있는 오케스트라다. 광주시향은 무엇인가 가슴에 절절하게 다가오는 탁월한 ‘음악적 표현력’이라는 타 지역의 추종을 불허하는 생래적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여타 도시와는 달리 본의 아니게 운명적으로 험한 역사의 질곡을 헤치며 살아와야 했던 지역 고유의 특성에서 기인한 것일 테고 이것은 거장 김홍재 지휘자의 캐릭터와도 너무나 절묘하게 매치되며 특별한 상승효과를 거두고 있다.

오래 전부터 광주시향의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하고 또 절대적인 필요 요소로서 다음 세 가지는 여러 경로에서 끊임없이 주장돼 왔다. 바로 거장 급 지휘자의 영입과 대폭적인 처우개선, 클래식 전용 홀에서의 연주 등을 통한 단원들의 자존감 확립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지금 광주 시향은 이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는 이미 충족되고 있는 상태라 말 할 수 있다.

현재 광주시향의 상임지휘자 김홍재는 무려 400여곡의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는 명실 공히 국내는 물론 아시아 최고 수준의 지휘자다. 그의 취임 이후 불과 2년여 만에 광주시향의 사운드가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는 단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다. 광주시향 단원들의 급여는 일반 공무원들 급여보다도 훨씬 적다. 어디다 말하기도 부끄럽고 당연히 정상적으로 가족을 건사하기에도 많이 부족한 액수로서 단원 스스로의 자존감을 챙길 수 있는 여건은 더더욱 못 된다. 마지막으로 클래식 전용홀 역시 대표적 문화도시라면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필수적인 공공 인프라이다.

그동안 선거 때만 되면 수많은 지역 정치인들로부터 “문화수도”, “예술인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겠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었다. 이제 지겹고 지친다. 어쨌든 ‘예향’이라는 광주시의 교향악단은 얼마 전 서울 공연에서 본인들이 처해있는 열악한 처우와 환경들에 굴하지 않고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한 연주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그들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사투가 느껴졌다. 공연이 끝난 후 단원들을 위한 그 흔한 리셉션 조차 없었고 타 시도 교향악단처럼 공연 후 서울에서 1박을 더하고 쉬었다 내려 갈 수 있는 배려도 받을 수가 없었다. 한밤중에 초라하게 귀향하는 버스 안에서 단원들은 각자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지 궁금했다. 다시 돌아가서 공연해야할 비바람 정도 막아주고 앉을 좌석까지만 마련 돼 있는 저 거대한 창고 같은 공연장도 떠올랐다. ‘문화수도’, ‘예향’,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는 도대체 누가 하는 말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