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업실은 광주 KIA챔피언스필드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야구장에서 경신여고 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키낮은 아파트가 하나 나온다. 거리 간판에 아파트명칭이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단번에 찾지 못하고 지나쳐가기를 두차례 끝에 찾을 수 있었다. 결국 그가 마중나오고서야 숨바꼭질(?)은 끝났다. 예전 단층 주공아파트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이곳 3층에 26평 규모의 소담스런 그의 작업실이 있다. 시와 평론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노창수 전 광주시교육청 교육국장이 그다.

40년 이력의 교육공무원을 퇴임한 뒤 조용하게 창작을 하기 위해 거처 대신 따로 마련한 공간이다. 아파트가 낡아보였지만 그의 작업실은 리모델링을 한 뒤끝이라 말끔했다. 컴퓨터가 놓인 창작실을 제외하고 방을 터서 거실과 연결시켰고, 그 벽을 따라 책장이 놓여져 있다. 마치 작은 도서관을 연상시켰다. 그가 소장 중인 도서는 무려 2만권에 달한다. 시집류부터 시조류와 아동문학류, 문예지류, 사전류, 철학서류, 고전문학류, 작문교육류, 특수교육도서류에 이르기까지 목록화돼 있다. 그 수많은 책들이 가지런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들 모두 컴퓨터 DB를 구축했다. 이렇게 목록화해 체계를 잡는데만 2년이 소요됐다 한다. 이 서재들을 보며 그의 성품의 단면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책이 200∼300권만 넘어도 뒤죽박죽인데다 단박에 찾기 어려운데 그의 서재는 수많은 책들이 진열돼 있는데도 금방 원하는 책을 찾아볼 수 있도록 돼 있다.

이 2만권안에는 지금은 보기 힘든 도서들이 즐비하다. 이를테면 이광수 평론집 ‘문학과 평론’과 정비석의 ‘소설작법’을 비롯해 ‘문장’지 영인본, 한하운 시집 ‘보리피리’, 박인환 시집 ‘목마와 숙녀’, 조병화 초간본 ‘여숙’, 고 김만옥 시인의 유고집, ‘문학사상’ 창간호 등이다. 그는 여행을 통해 창작에너지를 채워넣곤 했는데 방문하는 곳에서 반드시 구입했던 클래식 CD도 많이 구비하고 있다. 또 그는 여전히 ‘문학들’ 등 문예지 구독을 하고 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젊게 시를 쓰기 위해서다.

작업실을 찾기 위해 길을 헤맨 필자는 그의 단정한 작업실에서 다시 반듯해지는 마음의 여유를 얻는다. 서재의 명칭은 ‘상래문학방’(相來文學房). 여기서 ‘상래’는 서로 오가면서 소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담소나누기 위한 공간이라는 설명이다. 현판은 광주학생교육원장을 역임했던 양전 김원익씨의 서체다. 서재 제일 위쪽에 놓여져 있다. 몇번이고 눈길이 갔다. 서체가 따뜻했기 때문이다.

그가 퇴임 후에도 수많은 책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된데는 이곳 상래문학방 덕분이다. 이 상래문학방을 갖추게 된 이면에는 농촌에서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던 것과 무관치 않다. 그의 고향은 함평이다. 1948년생이니까 올해 만 일흔에 접어들었다. 그의 일상을 듣고 있자면 흐트러질법도 한데 여전히 자신에게 관대하지 않다. 70대에 접어든 요즘도 남부대 등에 강의를 나가면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기다 강의없는 날은 매일 5시간씩 독서를 지속한다. 이렇게 몸에 배인 근성과 부지런함은 이미 습관으로 굳은 듯했다.

‘상래문학방’ 내 집필실에서 작업 중인 노 시인.

서라벌예술대학을 합격했으나 부친의 간경화 발병 등 어려운 여건으로 진학하지 못한 채 가난한 살림을 위해 1년 동안 농사를 도맡아 지었고, 1년 뒤 목포교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고교 시절 동국대 성균관대 홍익대 서라벌예술대학 전남대 동아대 등 대학에서 실시한 문예현상 공모에서 각종 상을 휩쓸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래서 서라벌예술대학으로 진학하고자 했던 것인데 꿈을 이루지 못했다. 교대를 졸업한 뒤 교직으로 진출했다. 1971년 첫 교직에 발을 내딛은 뒤 1981년 수백명이 응모한 중등교사 자격시험에 불과 3∼4명밖에 합격하지 못했으나 당당히 합격의 이름을 올린다. 이후 특수교사 자격을 취득하고 전문직 국어과 시험도 통과한다. 그의 근성이 어느 정도인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교육청에도 재직했지만 광주여고와 운남고 교장 등 학교 현장에서도 오랜 시간 재직했다.

교직에 있는 동안 그는 평론이나 논문쓰기에 집중했다. 문학 장르 중 평론쓰기에 재주가 있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이지만 의외의 답변으로 들렸다. 다른 창작도 힘겹지만 평론을 써본 문인이라면 평론쓰기가 얼마나 고단한 작업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문인 열이면 열 다 어렵다고 답할 것이다. 그는 평론집을 자그마치 6권이나 펴냈다. 시집을 7권 낸 그에게 평론이 차지하는 비중을 증거해준다. 평론 ‘전남의 해양문학의 뿌리와 현재’는 평단에 널리 알려져 있다. 우수문학도서로도 3권이 선정됐을 정도다.

그는 1973년 ‘현대시학’ 추천을 통해 시인으로 데뷔했고, 1991년 ‘시조문학’ 시조 천료와 1990년 ‘한글문학’ 평론 등단을 통해 여러 장르에 정식 입문하게 됐다.

“저는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꿈꿉니다. 모든 안락함과 고질화된 제 문학으로부터 탈출 말이에요. 새로운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정신력과 집에서의 문학적 삶에 대한 뒷받침이 있어 예술적으로 다능인의 삶을 끌고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교직은 물론이려니와 문단 데뷔도 40년을 이미 넘어섰다. 관록이 계속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시를 어떻게 볼까가 궁금했다.

“학교에 나가서 창작론을 교육해왔지만 문학적 삶을 항상 말해왔습니다. 공직에 머물 때는 시를 많이 창작하지 못했지만 시는 삶의 리듬이라고 생각하죠. 시가 리듬이 있듯 삶도 리듬이 있고, 인생도 리듬으로 엮어나가야 하지요. 모든 것이 시로 만들 수 있고, 시화할 수 있다고 봐요.”

아울러 그는 서정문학만 추구한 것으로 알지만 자신의 시편 중 시대의 부조리를 노래한 작품이 있다는 설명이다. 시 ‘손달’을 대표적으로 꼽는다. 시대의 불상사를 겪고, 죽음을 다룬 시로, 5·18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조에서는 ‘압력밥솥이 끓고 있다’가 있는데 계엄군이 시민을 살해하고 탄압을 하는 것을 형상화했다.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5·18 무렵 겪은 일을 일기로 썼을 만큼 그는 부조리한 시대에 대해 눈을 감지는 않았다. 해남에서 교직생활을 할때 현장연구원 제도가 있어 광주YWCA에서 몇몇이 모여 공부할 때의 오월광주를 잊지 못한다.

“아마 공부하고 있을 때였을 거예요. 기관총이 난사됐습니다. 판자건물이어서 먼지를 둘러쓰고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그런 와중에도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런 내용을 담은 시편도 창작했지만 발표를 안 했을 뿐 가장 시대적인 것을 회피하면서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죠. 반골기질이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그것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상래문학방’ 내부 모습.

다시 문학 이야기로 돌아와 재등단의 개념이 아니라 문학공모를 다시 해보고 싶은 생각을 내비쳤다.

“제 시가 낡아가고 있다는 것을 고쳐보고 싶다는 반증이 아니겠어요. 이 같은 결기가 없으면 좋은 시를 못쓴다고 믿고 있죠. 그래서 어디 공모에 당선돼 보고 싶습니다. 이는 제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 닦는 것이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작가로 평가됐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온다. 전혀 기억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철두철미한 현실주의자를 들며 한 시대 살다가 갔으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지, 요란하게 추모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다양한 세상이고 부질없는 것 아닌가라고.

“후대에 과제를 남기면 되겠어요. 시비(詩碑)를 세우고 하는 등이 필요가 없죠. 작품만 남으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판사는 판결로, 교사는 수업으로, 문인은 작품으로 남으면 되지 않을까요. 작품이 좋으면 다 찾아서 보게 될 것이고, 후대가 자연스럽게 기억할 것입니다. 문인들은 다른 데 한눈 팔지 말고 자기 작품 질을 높이는 노력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