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테(aphrodite, 비너스)는 미와 사랑의 여신이다. 그리스어로 ‘거품’을 뜻하는 아프로스(aphros)와 ‘반짝이는 것’을 뜻하는 디테(dite)가 합성된 말로 ‘거품처럼 반짝이다’라는 의미이다.

4월을 아프로디테의 달이라고도 하는데, 형형색색의 꽃들이 활짝 펴 황량한 대지를 반짝이며 수놓는 4월의 영어 에이프릴(April)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그리스신화를 보면 아프로디테는 크라노스가 낫으로 베어버린 우라노스의 성기가 바다에 떠다니며 생긴 거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정액도 일종의 거품으로 볼 수 있으니,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기는 한다.

거품의 특징은 드라마틱한 생성과 소멸에 있다 하겠다. 일시적 초월과 잉여로서 급격히 몸집을 불렸다가 일순간 사라지는 허망한 모습에서,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과 같은 인생무상이 떠오르는 건 무슨 연유일까.

안데르센이 쓴 ‘인어공주’라는 동화가 있다. 다들 잘 알고 있듯, 인어공주는 왕자를 사랑한 나머지 목소리를 잃는 고통을 감수하며 진실한 사랑을 얻지 못할 경우 물거품이 되는 위험까지 무릅쓰고서 기어이 사람이 되고야 만다.

그러나 왕자는 생명의 은인을 이웃나라 공주로 착각하고 그녀만을 사랑할 뿐이다. 이에 언니들은 왕자를 죽이면 다시 인어로 돌아갈 수 있다며 칼을 건네는 등 적극적으로 살인을 교사하기에 이른다.

번민 끝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인어공주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바다에 몸을 던지고, 그 순간 공기의 정령이 되어 물거품으로 변하면서 하늘로 사라진다.

인어공주의 결말이 비극인지 희극인지 지금도 헷갈린다.

우리의 고정관념처럼 결혼을 하면 해피엔딩이고, 헤어지면 새드엔딩이라는 논리는 유행가 가사처럼 너무 통속적인 건 아닐까.

인어공주가 왕자와 결혼해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지지고 볶으면서 사는 게 좋은지, 아니면 짝사랑일망정 추한 꼴 안보이고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게 좋은지 살아볼수록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일시적이고, 물거품 같다는 것을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아카데미 감독상, 작품상, 미술상, 작곡상 등 4관왕에 빛나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쉐이프 오브 워터(부제:사랑의 모양)’를 보면서 인어공주를 떠올렸다.

인어와의 사랑, 여자 주인공이 말을 못 하는 것이 비슷하기 때문인데, 다른 점은 인어가 남자고, 여자 주인공이 그리 예쁘지 않다는 것이다.

인어공주는 왕자가 은인을 이웃나라 공주로 착각하고 있음에도 말을 하지 못해 가슴앓이 한다. 그러나 ‘쉐이프 오브 워터’의 여주인공은 말을 하지 못함에도 의사소통에 전혀 지장이 없고 오히려 자신만만하다. 사실 사랑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심전심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을.

또한 인어공주에서 물은 사랑을 막는 장벽이 되지만, ‘쉐이프 오브 워터’에서 물은 사랑을 나누는 공간 내지 해방의 공간이 되고, 물위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물거품은 물의 질량감을 완화시켜주고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물은 형태가 없다. 그것을 담는 용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랑도 형태가 없다. 그것을 느끼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을 ‘물의 모양’, 부제를 ‘사랑의 모양’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시원한 맥주를 잔에 따르면 맥주의 자기 초월이 일어난다. 황금빛 맥주를 감싸면서 잔 위로 흘러내리는 흰색 거품, 쭉 들이키면 크림 같은 부드러운 거품 뒤에 톡 쏘는 청량감, 달콤 씁쓸한 뒷맛이 목구멍을 타고 흐른다.

오늘 맥주나 한 잔 하면서 고상한 영화를 한 편 보는 건 어떨까. 거품을 느끼고, 거품 같은 인생을 음미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