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란 영화가 있다. 이 문장은 배두나씨가 도서관에서 빌린 화첩 속의 메모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말이다.

그 나머지 말은 네가 너무 좋아. 봄날의 곰만큼. 난 당신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귀여운 곰같이 사랑스럽답니다. 이것은 당신을 향한 내사랑의 시작입니다.

이다. 배두나는 그 후 이 문장이 너무 좋아 그 메모의 주인공을 자신으로 생각하고 메모를 쓴 상대를 찾아 헤매 다닌다는 다소 엉뚱하지만 매우 상큼한 영화이다.

이렇듯 곰은 1월 초순 경 겨울잠 속에서 새끼를 낳아 4월 상순 무렵 봄이 활짝 무르익을 때 굴속이나 나무 속에서 예쁜 새끼를 2~3마리 아장아장 거느리고 나온다.

아시다시피 3달 정도의 야생동물들 새끼는 벌서 초등 2~3학년 정도 한참 잘 놀 때의 성숙기가 되어 있기 때문에 형제들끼리 혹은 어미를 상대로 끊임없이 장난을 치려 한다.

동물원에도 예외는 아니다. 어미는 옆에서 그저 보호만 하면서 항상 흐뭇한 눈으로 바라만볼 뿐 특별히 개입하거나 말리지는 않는다.

이 곰 가족의 평화스런 한 때는 멀리서 지켜보는 이에게도 삶의 에너지를 충만케 해주는 힘이 있다. 만일 누군가에게 봄날의 곰처럼 자기를 예뻐해 줄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혹시 마음에 든다면 결코 그 사랑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이 메모 속에는 분명 한 남자의 순수하고 진실된 사랑이 투명하게 엿보여 진다.

또 ‘봄은 고양이로소이다.’란 이장희 시인의 시가 있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고양이들은 그렇지 않아도 잠꾸러기들인데 봄이 되면 그 잠이 최고조에 이른다. 밥 먹고 털 다듬는 시간이외엔 거의 모든 시간을 봄잠으로 소일한다. 약간 추우면 햇볕아래서 너무 더우면 그늘 밑으로 들어가 편안한 잠자리마저 추구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잠은 넋 놓고 자는 깊은 잠도 아니요 민감하게 반응하는 선잠 또한 아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일생 겪어보지 못하는 참으로 신비스런 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아마도 봄볕에 겨워 조는 고양이의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며 썼을 것이다. 잠은 곧 평화이다. 그래서 이 시를 읽노라면 조금씩 평화가 찾아오는 것 같은 나른함에 빠져든다.

날씨가 풀리고 아지랑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봄이 되면 누구나 눈이 게슴츠레해 지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 지는 고양이과 동물과 비슷하게 된다.

이는 겨우내 움츠렸던 몸이 다시 따뜻함에 적응하기 위한 근육들의 몸부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 의지는 이래서는 안 돼! 하지만 내 몸은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드는 건 생리적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럴 땐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주는 게 더 자연스럽다. 그러다 봄의 본격적인 괘도에 오르고 꽃이 팡팡 터지면 사람들은 들로 산으로 몰려다닌다.

바로 봄날의 곰처럼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선남선녀들은 한 쌍의 다정한 봄새들 마냥 간절히 사랑을 갈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