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회학자 W. F. 오그번은 문화변동 과정에서 물질문화는 발명과 발견, 전파의 과정을 통해 쉽고 빠르게 발전하는 반면 비물질 문화는 제도, 관념, 의식, 가치관 등을 포함하기 때문에 빠르게 발전하지 못해 물질문화의 변동이 앞서나가고 비물질 문화의 변동이 상대적으로 지체되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를 ‘문화지체현상’이라고 규정하였다.

이 문화지체현상은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거의 모든 분야에서 드러나는데 간단한 예로는 자동차의 보급은 급속하게 진행되는 반면 교통안전에 대한 의식수준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교통사고와 교통질서 위반이 빈발하는 경우, 최첨단 공연장들은 속속 만들어지고 있는데 관객들이 기본적인 관람 에티켓 은 매우 부족한 경우, 휴대폰과 컴퓨터 관련 기술의 발전 속도는 폭발적인 수준인데 그와 연관된 사용자들의 윤리가 확립되지 못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부작용 등이 있겠다.

우리 지역 사회의 문화 예술계에도 예외 없이 그 현상은 나타나고 있다. 먼저 시립예술단체의 관리와 운영이 주요 목적중의 하나인 광주문화예술회관의 예를 들어보겠다.

작년 시립오페라단이 창설된 이후 지역의 시립예술단체는 모두 8개로 늘었는데 이 비약적인 양적 증가와는 무관하게 그 관리체계는 아직도 전 근대적이다.

문화예술회관 일반직 공무원들의 근무방식은 순환보직제로서 시립예술단의 운영에 대해 조금 알만하면 다른 곳으로 떠나고 다른 담당자가 부임하여 처음부터 다시 업무 파악을 시작하고 이 같은 현상은 매년 끊임없이 반복되며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공무원 조직의 운영 제도 상 불가피하다는 핑계만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시의 인사정책 등 제도 개선을 통해서라도 담당 공무원의 장기 근무를 통한 업무의 지속성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며 특히 일반 공무원보다도 문화 예술 관련 전문가들을 대폭 영입하여 그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지금의 형태는 말하자면 마치 비전문가가 전문가들을 관리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구조인 것이다. 문화나 예술은 제도권에서 통제나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비로소 창의성을 띄고 제대로 경쟁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광주문화예술회관은 아시아문화전당의 콘텐츠 부족 현상을 메울 사실상 지역 유일의 마지막 보루라는 점에서 그 역할과 중요성이 실로 막중하다.

툭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아시아문화전당의 컨템포러리(contemporary)공연물은 아직 지역민들에게 낯설고 흥미가 떨어지는 장르다.

기초예술 공연물들에 대한 보급과 활성화조차도 어렵게 진행 중인 도시에서 현대 공연물들이 통할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한 기대가 아니었겠는가?

수년전 거대한 국책 문화 사업의 성과물로서 7천억이 투자된 건물 ‘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했었다. 당시부터 많은 지역 문화 전문가들이 예상 했던 대로 지금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 공연 예산이 줄고 콘텐츠가 궁해지자 소위 ‘지역 협업’ 이라는 구실로 지역 시립예술단체들을 끌어들여 콘텐츠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으니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현재 ‘아시아문화전당’의 법적 성격은 국가 기관이다. 그런데 이마져도 수년 후에는 법인으로의 전환을 고려중이다. 애초부터 수익성과는 거리가 먼 이 거대한 구조물의 운영까지 광주가 떠안게 된다면 그 결과는 너무나 뻔하고 끔찍하다.

현재 지역의 각종 공연물의 초대권 남발도 심각한 지경이다. 한국의 경제적 수준 등을 고려할 때 이제는 소외계층에 대한 무상 예술체험 제공조차도 그만 두어야 할 시점인데 오히려 멀쩡한 중산층은 초대권이 아니면 공연장에 발걸음을 잘 하지 않는다.

예술가들이라고 물만 먹고도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다 같이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옆 나라 일본서는 아이들의 공연물조차 500엔이라도 입장료를 받는다. 처음부터 봉사를 전제로 하는 일들이 아니면 별 볼일 없는 아이들의 공연이라 할지라도 당연히 수고한 부분에 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통계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박물관에 많은 기부금과 기증품을 제공하고 있는 사람들을 조사해본 결과 놀랍게도 이들 중 아동기에 루브르 박물관에서의 문화, 예술체험을 경험 했던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어릴 적 얼마 안 되는 입장료와 체험 프로그램비용을 지불했던 아이들이 성장하여 사회에서 성공을 거두었을 때 다시 지역 사회의 문화 예술계에 투자와 기부가 이루어지는 선순환을 확인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질문명의 발달과 경제력의 증가가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난했을 때보다 훨씬 더 천박하고 더럽게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문화예술계에서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작금의 ‘Me too운동’도 문화 예술계의 문화지체현상으로 일어난 범죄적 상황들에 대한 격한 반발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상당히 늦은 감은 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가기 전에 이제라도 우리 지역 문화예술계 전체를 한번쯤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솔직히 광주는 제대로 된 클래식 전용 홀 하나가 없고 그 밖에 여러 가지 면에서도 문화예술 관련 인프라가 척박한 곳이다.

우리가 타 시도의 비아냥과 견제 속에서도 ‘문화 수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라고 줄기차게 주장하는 논거가 과연 있기는 한 것인지, 만약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 나갈 의지를 갖고는 있는지, 아니라면 왜 도대체 부끄러워하지 않는지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