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낭보다. 나은영 한국스포츠문화예술협회 광주지부장이 2018년 첫 날부터 네덜란드 벨트호벤에서 열린 ‘라인댄스 월드 챔피언십’에서 쇼케이스 부문 월드챔피언을 따냈다. 나씨는 2010년 WCDF(World Championship Dance Federation)에서 아시아 최초로 우승을 거머쥐며 한국 라인댄스의 가능성을 연 인물이다.

이번 대회에서 그는 프랑스, 독일, 이태리, 체코, 미국, 네덜란드 등 22개국을 대표하는 최고 기량의 무용수들과 경쟁한 끝에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와 함께 라인댄스 개인 부문 중 최고 레벨인 ‘리갈 스타’(Rigal Star)자격을 받는 겹경사를 맞았다. 그가 라인댄스를 접하고 첫 출전해 ‘월드챔피언’을 따냈던 네덜란드에서 이뤄낸 또 한 번의 쾌거라 개인적으로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달 17일 광주무용협회 사무실에서 나은영 한국스포츠문화예술협회 광주지부장을 만났다. 2018년 첫 출발부터 경사를 맞은 그는 여전히 승리의 기쁨에 취해 보였다. 자리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기다렸던 듯 30여년 즐거웠던 춤 인생을 펼쳐 보인다.

그는 워낙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가만있으면 좀이 쑤셔서 늘 바지런했다. 어렸을 때부터 수영을 했고, 기계체조도 배웠다. 무엇보다 그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음악, 그리고 춤 이었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일이 그렇게 좋았다 한다. 부산스레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는 꽤 감성적인 아이였던가 싶다. 부모님과 거실에서 TV를 보다가도 슬픈 음악이 흘러나오면, 부모님을 방에 들어가게 했다. 그러고선 음악에 몸을 맡겼다. 그것이 자신의 내면의 감성을 표출하는 창이었고, 창작이었다. 나씨는 음악을 읽을 줄 아는 꼬마였던 것이다.

그랬으니 그가 무용을 시작한 것은 당연한 절차였는지 모른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으로 무용을 배웠다. 잘 뛰고 표현력도 좋은 그는 자연스레 주역을 맡았다.

본격적으로 박금자 무용학원에서 발레로 입문을 했다. 그런데 나씨는 ‘토슈즈’ 신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토슈즈를 벗어버리면 더 마음껏 춤을 출 수 있었다.

“발레는 정말 좋았는데, 토슈즈를 신으면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어요. 춤에 대한 이해가 있는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발레보다는 더 자유로운 현대무용의 움직임에 끌렸던 것 같아요.”

그는 조선대학교 무용학과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독일로 건너가 공부를 계속했다. 그러던 그가 실용댄스로 방향을 튼 것은 ‘댄스스포츠’ 강의를 제안 받으면서다. 물론 고민을 했지만 길게 할 순 없었다. 그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였고, 직업을 가져야만 했던 때였다. 2003년부터 댄스스포츠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춤을 전공했지만 다른 장르라서, 배우면서 동시에 수강생들을 가르쳤다. 현대무용으로 다져진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같으면서도 다른, 새로운 길에 서서 그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한다. 하나는 춤을 추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때문이고 또 하나는 배우는 사람이 너무나 좋아해서였다. “클래식만 줄곧 해 온 제가 다른 춤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신기했어요. 또 다른 업으로서 일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던 것이죠. 그리고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댄스스포츠를 배우러 찾아오는 게 놀라웠어요. 남녀노소 불문하고 즐거워하면서 춤을 추는데 내가 너무 ‘좁은 무대’만을 고집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자문도 했던 때이죠.”

누군가를 가르치게 되자, 열정이 샘솟았다. 그는 당시를 “목을 못 가누는 아기 목을 잡고 자이브(jive)를 췄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다만 바스트를 전혀 안 움직이면서 춤추는 현대무용의 테크닉을 무너뜨리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자, 자유가 펼쳐졌다. 토슈즈를 벗고서, 더욱 재미나게 춤을 췄던 것처럼 그는 어떤 틀에서 벗어나는 일이 꽤 즐거웠다.

그런 그가 ‘줄을 맞춰’ 스텝을 밟는 라인댄스에 빠진 것은 조금 의외다. 계기는 간단했다. 현대무용의 대모인 육완순씨가 라인댄스를 시작한다는 소식에 친구와 동행했던 그다. 역동적인 댄스스포츠를 추던 그에게 라인댄스는 사실 단조롭고 지루했다. 처음 40개 작품을 전부 외워야만 했다. 매일 하루에 8시간씩 연습이 이어졌다. 그랬더니 지루했던 발이 활발해졌다. 발을 내딛고 걷고 찍고 사방을 돌면서 춤을 추는데, 라인을 맞춰가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라인’은 최소한의 규칙에 지나지 않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자유로운 춤판에 그는 홀딱 반했다.

“라인댄스는 스텝으로 이뤄져 있어요. 그러니 기본 스텝만 익혀두면 언제 어디서라도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죠. 스텝에 스텝이 더해지고, 자신이 배운 만큼 다채로운 작품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 다양한 스텝을 알아가는 그 과정이 정말 재미있어요”

라인댄스 최고 레벨인 ‘리갈 스타’를 획득 한 그는 ‘릴트’, ‘스무스’, ‘왈츠’, ‘큐반’, ‘펑키’, ‘노벨티’ 등 각 장르에 모두 능하다. 온갖 춤 장르를 모두 섭렵했다고 보면 된다. 그 중 정해진 형식이 없고 한 편의 ‘쇼’를 보여주는 듯 한 ‘노벨티’ 부문은 나씨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다. 그 부문에서는 실제로 1위를 놓쳐 본 적이 없다. 발레·현대무용·댄스스포츠까지 다채로운 춤을 추며 쌓아온 내공이 발휘되는 것이다.

“리갈 스타가 되면 총 6개 작품 중 네 개 작품은 정해진 것을 소화하고, 두 개는 창작품을 올려야 합니다. 다양한 스텝을 아우르는 것도 중요하고, 이를 표현할 음악의 변화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죠.”

‘큐반’ 경연 모습.

스텝이 정해져 있다하여, 춤에 ‘스토리’가 부재한다고 생각한다면 옳지 않다. 스텝을 기본으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또 라인댄스의 매력이다.

나 지부장은 영화 OST를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것을 선호한다. 고전이나 유명한 영화 음악의 경우에는 노래만 들어도 스토리가 떠오르기 마련이라서, 춤을 추는 자신도, 그것을 보는 사람들도 쉬이 공감할 수 있어서다. 다음 작품으로는 나씨가 좋아하는 영화 ‘쿵푸팬더’ OST를 스텝 안에 녹여볼 작정이다. 귀엽고 재미난 선율이 그의 손끝 발끝에서 어떻게 풀어질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올해 그는 ‘라인댄서’ 양성에 힘을 쏟는다. 특히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좋은 지도자가 나와야만 실력 있는 라인댄서들이 많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 교사들의 관심이 높은 것은 라인댄스 1세대 입장에선 호재다. 교사들 덕에 어린이 라인댄서들이 성장해가고 있다.

앞으로 그의 꿈은 춤추고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다. 평균 수명이 100세가 넘어간다는데, 은퇴 후 삶을 즐겁게 할 춤판을 깔고픈 마음이다.

‘큐반’ 경연 모습.

“저는 춤이 정말 좋아요. 여생을 춤추고 사는 게 제 꿈이자 목표이죠. 춤이란 무기를 가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교류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광주에 누구나 자유롭게 춤추고 즐기는 놀이터를 꾸미고 싶어요.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르겠어요. ‘그게 예술이야?’라고요. 그렇다면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무엇이 예술이냐고’요. 사람들이 춤을 매개로 모이고, 또 교류하고 즐겁다면 그것 또한 아름다운 예술이 아니겠어요? 언제 어디서든, 춤이란 언어로 대화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