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아티스트’란 표현은 어떨까. 그는 꼭 말을 가지고 노는, 마술사 같았다. 사람 감정이란 게 대개 ‘기승전결’이 있기 마련인데, 그가 툭툭 던지는 말은 앞선 달아오름이 없이 마음에 확 꽂히고 만다. “쓰겄다”고, “내가 니 속 다 안다”고 또 “말 안 해도 다 알어야”라고 줄줄 외는데 주책없이 그만 가슴이 뭉클하고 말았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라고 소개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지정남씨는 ‘말바우아짐’ 이라고도 불리고 마당극 배우로도 유명하다. 무엇보다 그의 구수한 사투리는 어느 것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지정남씨만의 트레이드마크다. 아마 전라도 사람이라면 텔레비전에서건, 라디오에서건, 연극무대에서건 그의 음성을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그의 얼굴은 몰라도, 목소리를 들으면 단박에 알아보는 시민들도 많아 늘 ‘입조심’ 한다는 그다.

다만 기자와 대면한 그는 아주 솔직했다. 커피숍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지정남씨의 진솔한 인생사가 훤히 펼쳐졌다.

광주여상 학생회 부회장이었던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데모’ 주동자였다. 꽃 같은 시절에 그가 응시한 세상은, 공교롭게도 어둠이었다. “왜 열심히 살아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라는 응어리가 가슴에 얹혔다. 그러한 의문은 18세 소녀를 ‘노동운동’이란 거친 바닥으로 이끌었다.

“학교에서 ‘일’을 만드니까, 바로 취업을 시켜버리더라고요. 그때 양산동 무등양말에 취직해서 일을 했어요. 그런데 노동환경·급여·대우 모두가 형편없더라고요.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보고자 노조를 결성하려 했는데, 그런 소문은 어찌나 빨리 도는지 2년도 채 못 다니고 잘렸어요. 그때부터 7개월 간 금호타이어에서 해고된 아저씨들하고 같이 농성을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사회운동의 또 다른 장이었던 ‘마당’에 선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씨는 사회적 어젠다를 마당극으로 선보여 온 놀이패 ‘신명’에 입단, 배우로 활동했다.

지정남 씨는 “작품을 통해 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들여다보고, 꺼내서 관객과 함께 이야기하는 게 가장 재미있다”며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친한 언니 같은 편안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최기남 기자

그에게 마당은, 하고 픈 이야기를 어떻게든지 내뱉을 수 있는 일종의 대나무 숲이자, 누구의 이야기라도 귀 기울일 수 있는 평화의 판이었다. 무대가 관객과 배우의 관계성을 끊어낸 ‘낯선 땅’이라면 마당은 그냥, 지금, 여기였다. 노동운동을 하던 길바닥이나, 마당이나 그에겐 매한가지였다.

“마당은 턱이 없죠. 극의 중심에 있다가도 바로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습니다. 그 손을 잡고 당장 술을 먹으러 갈 수도 있고, 데모를 하러 나갈 수도 있고요. 동등해서 좋은 것 같아요. 마당의 바깥세상은 그렇지 못했지만요.”

그래서일까. 그는 마당에 서는 것이 좋았다. 무엇이 가장 좋았냐 하니, “다들 나를 지켜봐주어서”라 한다. 지씨에게 관객들의 시선은 자신을 향한 관심이었다. 실제로 그가 연극을 시작한 이유도 칭찬받고 싶어서였다.

“10살 때, 저의 지지자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셨죠. 엄마는 형제 네 명과 사촌 두 명까지 여섯 명의 자식을 거둬야 했고요. 그러니 자식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두는 게 어려웠겠죠. 먹고 사는 게 바빴으니까요. 와중에 제가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던 것이 연극이었어요.”

눈에 띄려고 애썼고, 그래서 고단했다. 연극은 그의 결핍된 애정을 채워주는 힘이 됐고, 그 힘은 그를 연극하는 배우로 키워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가난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극단 생활은 그에게 꼭 60만원의 돈을 쥐어 주었다. 그래서 ‘조금 덜’ 가난해보고자 시작한 것이 방송 일이었다. 광주MBC에서 방영한 국악프로그램 ‘얼씨구학당’의 패널 자리였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전라도말을 잘하는 것이었으므로, 완벽한 기회였다.

“패널로 시작해서 메인 MC가 됐어요. 그렇게 방송을 타니, 여기저기서 내레이션 녹음 요청도 들어왔죠. 말바우아짐으로 불린 것도 사투리 덕이죠. 말바우가 말을 ‘바우’(바위)처럼 하란 뜻인데 저와 딱 알맞은 별명이었죠.”

구수한 사투리로 시민과 소통하는 리포터로도 활약했다. 맡은 바가 있으니, 말을 ‘바우’처럼 했을 뿐인데 그 탓에 방송에서 하차하는 일도 벌어졌다. “아침부터 여편네가 사투리로 떠든다”는 기막힌 이유에서다. 방송이 권력의 아귀에 완전히 장악됐을 때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투리 사랑은 계속됐다. 이젠 찾아서 공부할 정도다. 교본은 바로 시골서 사는 할머니들. 할머니들을 쫓아다니면서 옛말을 터득했다. 살아있는 교본들이 사라지면 곧 잊혀 질 언어들이, 그로 인해 생명이 연장된 셈이었다.

소리극 ‘권번 꽃다이’

사투리가 하나의 예술장르가 되니, 그에게 또 다른 기회들이 생겼다. 전라도 말 자랑대회에서 사회도 보고, 지난 ‘촛불정국’에서는 무대에 올라 진행을 맡기도 했다. 그의 말들은 민초들의 울화통을 가라앉히는 묘한 힘을 가졌다. 분명히 처음 본 사람인데 몇 번이나 마주쳤던 것처럼 편안함이 느껴진다.

“사투리는 표현이 은유적이고 시적이에요. 꼭 판소리 같죠. 울고 있는 사람한테 가장 따뜻한 말 한마디가 뭔지 아세요? 바로 ‘애썼다’ 이 세 음절에 담긴 억양입니다. 말에는 정말 큰 힘이 있어요. 작품의 대사들도 사투리를 활용하는데 그만의 맛이 있어요. 드라이한 표현의 표준어에서는 느낄 수 없는 힘이죠.”

그러면서 그는 몸소 대사 한마디를 읊어준다. “득수야, 어메 없드래도 절대로 자빠지지 말어라잉” 옛 여성 예인들의 삶을 그린 ‘권번 꽃다이’에 나온 말이다. 이를 표준어로 바꾸면 “득수야 엄마 없어도 절대로 넘어지지 마”다. 전라도 말에 담긴 특유의 속울음이 사라져 버린다.

40대인 그가 전라도 말로 사람을 울고 웃게 한다. 사실 그럴 나이는 아닌데, 배우란 감정의 깊이와 진한 사투리가 가진 힘이다. 지씨는 곡성사투리를 그대로 구사하게 된 이유를 “사투리 교정 시기를 놓쳐서”란다. 지정남 다운, 유쾌한 설명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바로 생계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가 만약 다른 친구들처럼 대학에 갔다면, 아마도 지금쯤 ‘교양 있는 표준어’를 말하는 중년여성이 돼 있었을지도.

요즘 그는 ‘젠더’(사회적 의미의 성) 의식에 큰 관심이 있다. 계기가 있었다.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맡을 때 일이다. 속 시원한 멘트로 시민들의 큰 박수를 받았는데, 정작 그는 밤잠을 설쳤다. 그날도 행사를 잘 마치고 피곤한 몸을 뉘이다 문득 “난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재미있게 하려고 혹은 속 시원한 풍자의 뜻으로 외쳤던 ‘미스 박’과 같은 표현들 때문이었다.

“젠더 의식이 정말 부족하구나 느꼈어요.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그런 언어들이 사실은 남성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부적합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자라온 내가 마이크를 잡고 또 다른 ‘재교육’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엔 정중하게 거절을 했어요. 지금은 제 예술적 방향성도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아요.”

이전에는 잘 노는 배우였다면, 이제 그는 관객들에게 질문하는 배우로 변화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쓴 극으로,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연극을 처음 접할 때부터 사람들의 관심이 그리워 몸부림을 쳐왔으니, 이젠 조금 놓아도 될 듯 싶은 것이다.

“지금까지 내 삶의 기준이 바깥에 있었다면 이젠 안으로 들이고 싶어요. 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잘 들여다보고 꺼내 보이고 싶죠. 나 이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들은 어떤가요? 묻는 것이죠. 속 얘기 털어놓는 친한 언니처럼요.”

세월호 유가족 이야기를 다룬 ‘꽃신’, 여성 예인 삶을 그린 ‘권번 꽃다이’ 그리고 자신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풀어낸 ‘즐거운 나의 집’도 그가 세상에 내던진 질문들이다. 그는 계속해서, 그리고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그가 기특히 여기는 ‘아름다운 언니’들처럼.

“그래서 먼 훗날에 나 죽을 때 되면, 후회 없이 가고 싶어요. ‘나 그래도 내 안에 뭐가 있는지 많이 들여다봤소. 이제 관 뚜껑 닫으쑈. 닫아!’라고요.”

소리극 ‘권번 꽃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