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설령 지역 정서가 그렇다손 치더라도 지금 자신만의 예술방식을 결코 포기할 의향이 없다.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미술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 한 토막 굳이 하자면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은 혹시 그가 외국인이 아닌가하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대학도 이 지역에서 나온 광주 토박이이자 젊은 예술가일 뿐이다. 그를 처음 주목하게 된 것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도 광주 화단은 몇몇 원로들과 중진, 그리고 해외진출한 40대 전후의 화가들이 대표되던 시기여서 20, 30대 화가들에게 눈길을 돌릴 만한 여유가 그다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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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 중인 박세희 작가 |
2014년 당시 ‘광주비엔날레’ 포트폴리오 공모에 선정돼 제10회 광주비엔날레 전시에 참여했던 박세희 작가(33)가 그 주인공이다. 성공적으로 비엔날레 전시를 마친 뒤 박 작가는 유럽 미술시장을 노크한다. 그 이듬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예술 페스티벌인 ‘뉘블랑쉬’(Nuit Blanche)에 참여, 불타는 경관을 통해 이주와 이동에 따른 지역적 정체성의 상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영상작품 ‘상실의 풍경’을 출품해 호평을 받았다. 프랑스문화원 주재로 ‘2014광주비엔날레’를 찾은 ‘생카뜨르’(Centquatre) 감독이자 예술 페스티벌인 ‘뉘블랑쉬’ 감독인 호제 마뉴엘 곤잘베스(Jose-Manuel Goncalves)가 지역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프로모션하면서 박 작가의 파리행이 결실을 맺은 것이었다.
작가의 이런 성과의 이면에는 조선대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런던예술종합대학교 컴버웰 컬리지에서 사진을 공부한데다 광주시립미술관 양산동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축적한 것이 그 발판이 됐다. 물론 그의 노력이 본질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일상생활 속에서 그림이나 조각을 접해온 것도 한 이유다. 그의 부친은 조선대 미술대학 조소과 박상호 교수다. 그는 아버지를 보면서 중학교 때부터 미술에 계속 관심을 두어 왔다고 말한다. 어찌보면 미술의 피를 자연스럽게 유산처럼 물려받았을 수도 있다.
이런 박 작가를 광주시 동구 지산동 소재 작업실에서 만나 요즘 작업의 이면을 들어봤다. 그의 작업실은 한옥을 현대적 느낌을 살려 개조했다. 작가는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작업을 진행한다.
그는 처음에 순수미술 쪽보다는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미술이 주가 되기보다는 패션을 하기 위해 미술을 공부한 셈이다. 패션을 하고 싶어 그림을 하게 됐고, 서양화를 전공하게 된 것이다.
‘순수예술을 해야 디자인이 풍족해진다’고 하는 부친의 말에 따라 서양화과에 진학한 경우다.
“중간 중간에 방황을 했었죠. 그림을 계속 할 것이냐, 아니면 패션을 할 것이냐 고민을 하다가 대학 졸업 이후 그 시기가 제게는 고민이 제일 많았던 때인데 뉴욕에 갈 기회가 있어 어학연수차 그곳에 갔어요. 작업할까, 패션할까 하다가 석사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근데 그곳은 사진이랑 순수예술(드로잉 등) 작업을 많이 병행하는 풍토를 보고 우리 정서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뉴욕에 머문 시절이 사진과 순수예술의 융합을 가능하게 했다. 그 첫 출발점이기도 하다. 사진은 그가 학부 때부터 관심을 두던 분야다. 그때 학원도 다니면서 사진 공부도 틈틈이 했었다. 그는 서양화를 할 때 사진을 콜라주(collage)로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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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48시간페스티발’ |
그의 뉴욕 체류는 사진의 범위를 더 넓히게 한 계기가 됐고, 드로잉까지 겸하게 되면서 한결 더 예술적 깊이가 더해졌다. 그러다 유럽이 예술장르가 세분화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주얼 아트(파트)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영국으로 건너갔다. 비주얼 아트 안에 순수예술, 그리고 사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곳에 머물며 석사학위 과정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비주얼 아트 안에 다양한 영역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던 시기였다.
“우리는 순수예술 하면 서양화, 한국화 등으로 나누는데 사진이 당당하게 순수예술로 취급되는 것을 목격하게 됐습니다. 이때 저는 사진에 대한 개념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어요. 제 작업 초기부터 서양화가 단독으로 등장하지는 않죠. 사진 작업에 들어갈 때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게 아니라 회화처럼 만들어 재구성합니다. 이때부터 설치와 연출사진을 했구요. 회화처럼 그려간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해가고 있죠.”
이처럼 그는 지역에서 다소 앞서 가는 작업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지역화단의 정서와 충돌하는 양상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양화를 조금 하면서 사진을 조금 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광주화단의 시각이 읽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매체의 다양성을 가지고 언급돼야 할 대목인데 그렇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제가 유럽에서 겪어보니 다양한 베이스를 넘나드는 것이 오히려 예술에 대한 이해를 다양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 정체성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죠. 광주는 서양화와 사진을 분리하지만 제가 지금처럼 꾸준하게 작업을 하면 진지하게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광주는 바닥이 좁더군요. 그래서 무언의 태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것에 영향을 받는다면 누구를 위한 예술인가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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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48시간페스티발’ |
아울러 광주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잊지 않았다.
“광주에도 분명 힘든 부분이 있지만 작가로서 주목을 받을 만한 기회는 많은 것 같아요. 아마 서울에 있었으면 광주비엔날레를 위시로 한 국제행사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을 자주 만나지는 못했을 겁니다. 지방에 있는 것보다 서울에서 눈에 띄는 게 훨씬 더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작업 초기에 디지털 콜라주를 구사했다. 약간 드로잉하듯 사진을 접근한 것이다. 지금 그는 연출사진을 선호한다. 그는 기술에 관해 ‘기술 자체도 예술’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기술을 예술로 쓰면 예술이라는 입장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8월28일까지 베니스를 방문해 현대 미술의 경향을 목도하고 돌아온 그는 개인전을 일곱차례 가졌다. 올해는 쉬어가기로 했다. 국민대 대학원 박사과정 5학기를 수료한 상황이라 박사학위 논문을 정리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전시는 내년 후반기 광주신세계에서 열 예정이다,
이런 그에게 ‘어떤 작품, 전시를 해보고 싶냐’고 묻자 영화필름을 언급했다.
“짧은 실험적 영상을 해보고 싶습니다. 영화 필름을 해보고 싶은 꿈이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