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평생직장’의미가 많이 엷어졌지만, 한 직장에서 정년을 맞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최근 한 교수의 정년퇴임식에 초대받았다. 그가 지도한 ‘박사(博士)제자’들이 마련한 자리였다.

한정된 인원만 초청한 것도 그렇지만, 그 교수가 살아 온 학문에 대한 열정과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어떠했던가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여느 퇴임축하연과는 달라보였다. 그는 스승을 넘어 제자들의 ‘멘토’였음을 느꼈다.

그 자리에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일본인 교수의 퇴임식이 오버랩됐다. 히구마 다케요시 전(前)히로시마슈도대학 교수다. 20여 년간 친교를 맺어 온 그는 국경을 초월한 나의 멘토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추천으로 1년 동안 슈도대학에서 객원교수로 ‘한·일 문화비교론’과 ‘지방자치와 지역활성화’를 강의했다. 그 사이에 나는 히로시마의 ‘비핵(非核)평화도시’정책을 연구했다. 또 그 교수와 함께 한·일고령화 문제를 놓고 양국 현장을 방문하며 공동연구, 보고서를 냈다. 한국, 특히 전남의 노인복지문제는 나주·영암의 실태조사 등을 통해 기초를 쌓기도 했다.

후쿠오카(福岡)출신인 그는 고향발전은 물론, 그의 생활터전인 히로시마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한때 히로시마시장후보 물망에 오르기도 했지만, 후학양성과 지역발전에만 정열을 쏟았다. 지역의 젊은 직장인들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청년과 지역의 미래를 여는 모습이 생생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는 모습에 나도 마음을 다잡곤 했다.

정년을 맞아 히로시마의 큰 호텔에서 그의 ‘마지막 강의’라는 이름으로 열린 퇴임식은 히로시마 시민들이 마련한 것이었다. 지역사회가 마련한 그 날의 퇴임식은 내게 부러움과 충격이었다. 학교만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교수는 많은 사람들의 ‘멘토’였다.

어느날 밤 술잔을 나누며 말하던 그의 ‘사람 키우기론(論)’은 지금도 선명하다. “힘들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풀다 보면 나 또한 배우는 것이 많으니 서로 행복하고 보람이지요” 나도 그의 정신을 내 몸에 담으려 노력했다.

최근 TV프로그램에서 광주에 사는 ‘박일등 구두닦이’의 이야기를 봤다. 드라마 같은 삶에 눈물이 났다. 어린 시절 고아가 돼 온갖 풍상을 겪으며 구두닦이생활로 지쳐 있을 때 한 직업군인이 그의 기둥이 돼 주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군인형님’은 그를 어엿한 식당주인으로 키워냈다.

구두닦이 박일등사장은 은혜를 잊지 않았다. 식당운영은 부인에게 맡기고 지금도 구두를 닦고 있다. 그는 “나도 언젠가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다짐대로 노인들의 구두는 거저 닦아주며 ‘일등 인생’을 가꾸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 그런데 왜 그런 미덕이 희박해 질까? 돈은 없어도 지혜·지식·재능만 나눠줘도 되는 일은 많다.

“보통사람 이름도 3대는 간다”고 한다. 장수(長壽)사회가 된 지금은 할아버지-아들-손자가 공존하는 가족이 많다. 그러나 가족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이럴 때 사회공동체의 도움은 영양제다. ‘베푸는 만큼 되돌아오는 것이 복(福)’이라면 이러한 멘토링은 후손을 위한 ‘품앗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다. 사회가 다양화되고 황금중심이 되면서 심화되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가 방황하는 청년들이다. 이 문제를 풀어내는 사업이 ‘멘토-멘티 사업’이다. 세대·계층간 갈등의 치료제이기도 한 멘토링은 진정한 ‘인생나눔’이다.

인권도시-광주는 특히 ‘사람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서야 한다. 모두가 힘들어 하지 않고 함께 2인3각하는 도시는 인권도시-광주이어야 한다. 광주남구청소년문화예술회관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나눔과 소통의 배움교실을 운영하는 것은 행정의 당연한 모습이다. 멋지다.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