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새해는 밝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불행하다. 돌이켜보면 현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암울한 터널 속에서 미처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어 왔다.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2014년 세월호 사건, 2015년 메르스 사태, 그리고 2016년 최순실 게이트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는 부정부패와 무능, 도덕적 타락의 정도를 만천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야 말았다.

현 정부 들어 그 동안 ‘교수신문’이 선정했던 ‘올해의 사자성어’를 살펴보면 우리 국민이 얼마나 올바른 혜안을 가지고 국정을 진단해오고 있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 20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 2016년 군주민수(君舟民水) 등이 바로 그러하다.

도행역시란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처지 때문에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도 부득이하게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고집하거나 나쁜 일을 꾀함을 비유한 것이며, 지록위마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다는 뜻으로 진실과 거짓을 제멋대로 재단하고 조작하여 속임을 비유한 것이다.

혼용무도란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으로 혼용은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과 용군을 말하며, 군주민수란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라는 뜻으로 강물의 힘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민중적 궐기인 광화문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래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집회는 정례화·전국화 되어 지난 1월 7일 제11차 주말집회에 이르기까지 엄동설한의 추위 속에서도 그 열기가 내내 식을 줄 몰랐다. 기어이 박근혜 대통령을 퇴진시키고야 말겠다는 국민적 여망은 날로 뜨거워져 이미 촛불집회 참가자 수는 전국적으로 10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집회 참가자들의 면면도 실로 다양하다. 중장년층을 비롯하여 연로하신 어르신들, 청소년인 중고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부모 손을 잡고 따라 나선 초등생 어린이들, 심지어 어린 아기를 강보에 싸고 나온 젊은 부부들까지 이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칠흑 같은 정국의 밤거리를 촛불로 밝히기에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매 집회 때마다 100만 명 내외의 참가자들 모두가 법과 질서를 준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관제 쓰레기봉투를 마련하여 길거리를 청소하였고 바리케이드 너머의 경찰관들에게 꽃을 선사하며 가지고 온 간식을 나눠 먹기도 했다. 비폭력불복종 운동의 선구자인 마하트마 간디마저도 가슴 뭉클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들이 지금 이 땅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유신독재 박정희 정권의 폭압에 신음하며 저항하던 시절의 시, 김수영의 ‘풀’을 다시금 음미하고픈 신년 벽두가 아닐 수 없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짓밟히다 보면 바람보다 더 빨리 눕게 되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어도 마침내는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기어이 환하게 웃는 풀이 우리 국민이 아니던가.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자는 헌법정신을 어느 누구 하나 제대로 가르치지 않더라도 우리 국민은 스스로 민주이념이 무엇인지를 알며, 또 그것을 어떻게 해야 계승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뼈 속 깊이 체득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요한계시록 22:11)라는 말씀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이 암울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 땅의 서글픈 백성들이지만,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는 이치야말로 거슬릴 수 없는 천고불변의 섭리라는 사실만큼은 잘 알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한 나라의 가장 큰 정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마땅한 덕목을 상실하였다면 더 이상 그 자리에 연연해서는 안 될 일이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거늘 어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으랴.